
중학교 2~ 3학년 때였을 것이다. 오빠와 나, 여동생이 부모님 곁을 떠나 공부한다고 서울로 올라왔을 때 시골에서 친척 동생이 밥 해 주러 잠시 왔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친구처럼 지내기도 했을 테고 방과 후 시장을 같이 다녔을 텐데... 누구는 학교에 다니고 누구는 밥 해주던 처지여서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모로 미안하지만 그때는 철이 없어 그런 생각을 못하며 지낸 것 같다. 동생은 그 후로 살던 곳으로 내려가 남들보다 늦게 여고를 나오고 회사에서 팀장까지 했다니 똑똑했구나 싶었고 결혼을 한 후 수도권에서 살고 있단 전화가 와서 반갑다가 목소리도 더 이상 듣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단 소식을 들었지 뭔가!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와 기꺼운 마음으로 갔다. 아니, 같이 살면서 말이..

시누님이 겨울옷을 보내주고 싶다며 주소를 물어보셔서 겨울코트 있다고 대답했더니... 살 빠지기를 기다렸다 입으려 해도 빠지지 않아 아까워 보내줄 테니 잘 입으라 하신다. 그러고는 택배가 왔다.^^ 몸무게의 변화가 덜하긴 해도 나 또한 많이 먹은 날은 다음날 즉시 배 둘레에 티가 나는 요즘인데 새 옷이 아니라 미안하단 말씀에 입을만한 옷은 입고 아니면 재활용할 테니 신경 쓰시지 마시라 했다. 새 옷이나 다름 없었으며 이런 일에 고마우면 고맙지, 기분 나쁠게 무엇이란 말인가! 코트뿐 아니라 여름 면바지도 들어 있었고 스웨터에 넓은 스카프가 몇 개 겨울 방한복도 있었는데 골라서 재활용할 것은 내다 놓고 세탁에 약한 옷은 세탁망에 넣어 모조리 빨아서 면바지는 마르기 전 다림질을 했는데... 품이 넉넉하여 여름날..

엄마가 식사를 하시면 자주 토하시고 그러고 나면 식사를 잘 못하셨고 며칠 또 괜찮으시다가 이런 일이 반복되셔서 기존의 당뇨 이외에 노환이신 줄 알았는데 병원에 가시니 피검사에서 황달수치가 높게 나오며 담석이라는 판별이 나왔다. 동생이 이틀밤을 간호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응급실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동생은 신속항원검사만 받았지만 병동에서 간병하는 사람은 pcr 검사결과가 필요하단 소리에 정식 코로나 검사를 해보며 예상보다 하루 늦어지게 되었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1.3cm의 돌이 나왔단 소리에 안도의 기쁨이 있었다. 쓸개라고 부르는 담낭은 간, 십이지장과 연결된 소화기관으로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흘러나와 보관되는 장소다. 담즙이 흐르는 길을 담도라 하는데 엄마는 이 담도를 1.3cm의 돌이 꽉 막고 있었..

"별일이 다 있어서 전화했다." "아버지, 무슨 일이신데요?" "글쎄, 둘째 며느리 여동생이 방금 다녀갔거든?" "만두 먹으러 올래?" 못 갈 줄 알면서 기분 좋아하신 말이다. 둘째 올케의 여동생은 요번에 두 번째로 친정부모님 댁에 다녀갔다. 첫 번째에는 사돈댁 집안 잔치에 떡이 맛있어 보여 올케가 시어머님(울 엄마)께 맛 보여드리고 싶은데 일을 하고 있고 거리가 멀어서 머뭇거리자 부모님 사시는 곳과 가까운 올케의 여동생이 다녀오겠다며 떡을 들고 방문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미리 전화를 받으셨지만 당연히 며느리와 여동생이 함께 오는 줄 아셨단다. 그런데 혼자서 언니네 시댁을 찾아온 것이다. 생각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요번에는 김장을 했으니 찾아왔다는데 여러 해 동안 살림을 못하시는 친정엄마의 이야기..

낚시가 취미인 사람이 주변에 있어 이따금 생선이 전해지는데 요번에는 한치가 전달되었다. 완도까지 내려가 100마리 정도 잡아 처치(?)가 곤란하다니 먹어주는 것이 도와주는 셈인가! 작은 배를 바다에서 타면 멀미 나던데 어떻게 서서 낚시까지 할까 부러웠다. 다리 길이가 한 치(약 3.3cm)라서 한치라나? 한치를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잡히는 철이 6~ 8월까지로 짧아 값이 나간단다. 30~ 40cm로 제법 컸으며 다리가 몸통에 비해 짧았고 지느러미는 오징어보다 넓고 길었다. 뒷산에 다녀와 저녁을 하고 설거지에 해부까지 하려니 다리가 쉬고 싶다 했지만 먹을 생각에 꾹 참았다. 몸속에서 야무진 투명한 뼈가 나왔다. 쪄서 초고추장 찍으면 맛있다는데 냉동으로 전해졌고 요즘같이 습한 기온에서는 음식이 금방 상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