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호수공원 산책 3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려고 길 건너려는데
신호등에 버스가 걸려 있어 눈을 고정하고 쳐다보았다.
사람 먼저 건너라 파란불이 들어오면 행운이지만
버스가 먼저 떠나면 25분을 기다려야 하니 어쩌나!
그런데 버스가 먼저 떠나 체념을 하고 붐비지 않는
곳으로 옮겨 불 들어오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동네보다는 2도 정도 차이
나는 듯했는데 줄줄이 섰던 버스가 지나가면 햇볕이
따스해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읽다가 몇 분 남았는지 자주 전광판을 확인해야 했다.
하나 떨구면 다시 25분이니까 신문을 거의 읽었을
무렵 버스를 타고 시간을 보니 늦겠어서 문자를
보냈는데 아버지께서 읽지 않아 전화를 드렸더니
벌써 와 계셨고 12분 늦어 두 손을 흔들며 만나 뵈었다.
다녀온 며칠 사이에 기온이 확 올랐지만 이때만 해도
영상 4도 정도로 마스크와 모자까지 쓰고 아버지께도
찬 바람에 귀 가리는 모자를 푹 씌워드리고 머플러를 다시
둘러드리고는 팔짱을 끼고 30분쯤 걸어 호수에 도착하였다.
지난번 왔을 때 주변의 궁금했던 곳을 찾아봤으니
오늘은 호수 한 바퀴를 돌아보자고 여쭙자 아버지께서도
온전히 둘러본 적은 없으시다며 연 날리는 父子를 만나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고 쉬었다 가자하셔서 잠시
그네에 앉았다. 춘향이처럼 서서야 무섭지만 앉아서 타는
그네는 발 굴러도 정겨워 조금씩 움직였더니 힘을 합하셔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소년이 되신 것이다...ㅎㅎ
"초승달로 꾸민 곳도 있었구나!"
산책로에는 또한 나무집을 여러 채 만들어 놓아
갑자기 비가 오면 이곳에서 쉬었다 가시라 알려드리고,
전망대가 있었지만 계단은 힘들어하셔서 지나치다가
작년 가을에 호수 건너편에서 홍보활동을 하시던
같은 아파트에 사신다는 분이 나오셨나 바라 보니 주섬 주섬
떠나시려는 움직임에 아버지와 발 묶어 뛰기 하는 것처럼
걸음을 조금씩 빨리해서 만나 뵈었다.
"아휴 오랜만에 만나 뵙네요?"
"추워서 철수하려는 중인데 반갑습니다.^^"
집에서보다 커피가 맛나다며 고향사람 만난 듯 그랬다.
혼자서 산책하실 때는 계단이 없는 직선 길로
오셨다가 운동기구 몇 개 하시며 이곳에서 알게 되신
분들과 인사 나누고 돌아서시는데 같은 호수였어도
딸이 와서 그동안 못 보신 곳들을 둘러보시고
함께 온기를 나누며 걸으니 기분이 좋으시다며
너로 인하여 내가 기운을 얻는다 고마워하셨다.
만나자마자 운동하실 겸 호수로 향하게 되어
반찬을 해가기도 뭐 하고(솜씨가 좋으심) 길만 건너면
대형마트가 있어도 항상 그냥 가자 하셔서 무엇을
들고 오기가 사실 마땅치 않다. 요번에는 양배추 한 덩이,
콩나물, 간식거리와 김치찌개 해 드시라고 돼지고기를
보냉비닐에 넣어 호수 한 바퀴를 돌았으니...ㅎㅎ
바로 앞 마트에 들러 싱싱한 채소, 과일을 사면 되는데
딸이 돈 쓰는 게 마음 쓰이시는 아버지!
집에 도착했더니 소고기뭇국에 고춧가루를 넣으셨나
칼칼하게 끓여놓으셔서 해장국처럼 겉절이와 개운하게
밥 한 공기를 뚝딱 하고 달걀도 삶아 놓으셔서 하나
까먹어 배가 든든하였다. 2시간 가까이 걸어 고플 만도
했다며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과 부엌 위주로 걸레질을 한
다음 의자에 앉았는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어보셔서 낮에 신문
읽은 것이 도움이 되어 열심히 아는 바 설명해 드렸다.
"UN은 이럴 때 중재를 잘해야지, 뭐 하고 있는 거야?"
힘 빠진 UN이지만 나랏일에 세상사에 관심 가지시는...
우리 아버지는 역시 멋진 분이시다.^^*
2025년 3월 3일 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