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물소리길 4 코스 a
전날 하루 종일 비가 와 불안했지만 일기예보를 믿고
약속을 밀고 나갔는데 아침이 되니 햇빛이 나와
자외선은 강할지라도 걷기 좋은 날이 되었다.
서울둘레길을 이어가다 봄이니까 요번에는 시골길을
걸어보자며 달라진 물소리길 4코스를 선택하였고
경의중앙선을 타고 2시간이 걸려 양평역에 도착했더니
어여쁜 튤립이 반겨주었다.
갈산공원까지는 예전과 코스가 같아서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이곳에서 왼쪽으로 돌았어야 했다.
때문에 1km는 더 걸어 총 10km를 걸었던 날이다.
지도에서 물소리길 4코스는 양평역에서 원덕역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어져 있지만 막상 걷다 보면 지도보다 넓고
길이 구불구불해서 직선인지 전혀 모르겠었다.
여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남한강을 만나자
얼마나 한가한지 바라만 봐도 편안하고 좋았다.
이곳은 강물의 수위를 재는 수치가 원기둥에 표시되어
장마철 팔당댐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 같았으며 한층 물과 가까워져서 멍하니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누운 나무도 멋스러웠고...
봉긋거리는 물풀들과 마치 바다처럼 보였다.
햐~~~
이러니 기차 타고 올만하지!
기가 막히네!...ㅎㅎ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이 운동회를 하고 있어
왁자지껄 음악소리에 사람 구경을 하였고...
곧 숲으로 접어들었는데 이곳이 반복해서 1km를 다시
걸은 구간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으나...
아직은 뭣도 모르고 낮은 산길이 근사하다며 오르다...
정점에서 비가 온 후 축축해 보이는 정자가 보여
올라갈 마음은 없었지만 언제 다시 오겠냐 싶어
건성으로 올라섰는데 말이지...
나무들 사이로 운동장을 지나며 사람 구경에 잠시
잊혔던 강물이 나타나 정자에 오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거라며 근사한 풍경에 감동이 일었었다.
바로 옆에는 6.25가 일어난 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남쪽에 남아 있던 북한군이 곤란해지자 1950년 9월
하순 경에 양평지역의 공무원 가족이나 지방 유지 등
반공인사 600여 명을 강변 근처에서 집단학살한
생생한 소식과 함께 35주년이 되던 해에 추모의 비가
세워졌다니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묵념이 있었으며,
비목이란 노래가 이곳에서 비롯되었을까?
노래만 알고 있었는데 가사가 적혀 있어 찾아봤더니,
'초연'이란 화약연기를 뜻했으며 비목(碑木)이란
죽은 이의 무덤 앞에 세우는 나무비석으로 특히 6.25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가신 모든 영혼들이 대상이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절대 부르지 말라는 이 노래를
그녀와 나는 손을 모으고 정성을 다해 2절까지 불렀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려고 코스를 바꾸었을까?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들에게 찡한 교훈을 준 장소로...
주위에 그들을 달래주 듯 금창초(?)가 피어 있었고...
나리꽃도 군락을 이루어 6월 25일 즈음이면
활짝 피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에 우리나라의 곳곳이
전쟁으로 암흑이었으니 아름다운 강변이라고
비껴갈 수 있었겠는가! 잠시 숙연해지긴 했어도
자동차를 타고 갔으면 전혀 몰랐을 역사의 현장을
발로 밟아보며 알아간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낮은 산을 내려가자 물소리길 표시가 안 보여...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다 끈을 발견하긴 했는데 우리가
내려왔던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가고 있어서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운동회는 무르익어 어느덧 밴드가 나타났고
기분이 잠깐 내려앉았으니 멋진 음악 좀 들려줬으면 좋으련만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대각선 방향으로 나아갈 동안에
아~ 아~ 목소리만 풀고 있어 아쉬웠어도 청춘이 바로
명품이지 않겠나! 무조건 재미나게 학창 시절을 보내라는
마음속 바람을 보내고 씩씩하게 앞으로 향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2025년 5월 13일 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