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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갈 때나 다녀와서 地圖를 보고 확인하면 정리가 잘 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남해를 다녀왔다 함은 남해안을 다녀왔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해군은 원래 섬으로써 지명으로 존재하는 곳이다.

주위에 여수, 광양, 고성, 통영이 있다.

 


 

여행 가기 전 일기예보를 살피니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과 두꺼운 옷을 준비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 마침 비가 그쳐서 산허리에 안개가 걸쳐있음이 아름답고 신선했다.




 육지와 불과 600m 떨어진 남해 섬은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고립에서 벗어났다는데

어딜 봐도 바다가 보이고 제법 높은 산들이 심심찮게 이어져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북선은 유람선 선착장으로...




 나머지 남해대교 반쪽을 구경하며 이른 아침에 출발에 점심 무렵 도착했으니 출출했기에,




 갓 잡은 농어를 넣은 미역국에 밥 말아 먹었는데 시원하고 담백하였다. 육지 사람들은 소고기나 황태를 넣어 끓이지만

생선이 들어가 어색하기도 했으나 비린내가 전혀 없고 맛이 좋아 어리둥절하였다...ㅎㅎ

배를 편안하게 채우고...





 이순신 장군이 남해 바다를 두루 다니시며 23 전 23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셨지만,

정작 그분의 유적지를 가보지 않아 부끄러웠는데 요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곳인 '이순신 순국공원'에 도착하였다.

특히 남해 바래길 중 '이순신 호국길'이라 하여 둘레를 걸어서 갈 수 있는 시발점이기도 해서 반가웠으나

지도를 보니 점심 먹었던 곳에서 충렬사가 가까웠는데 그냥 지나쳐 와서 아쉬움이 겁나게 남았다.




 왜냐하면 '이순신 순국공원'에는 새롭게 조성된 곳도 많지만 이락사(李落祠)라 하여 이순신 장군이 적의 탄환에 맞아

이곳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한 바다'라는 뜻의 이락포에서 따온 사당이 있었으니 이곳에서 장군의 시신을 잠시 안치했다가

충렬사에 가묘를 만들어 장군의 고향인 충청남도 아산으로 옮기기 전 3개월간 안치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장군의 유적지 중 승전지가 아니라 장군이 돌아가신 지점에 오게 되어 안타까움이 일었고,

당일에 투구를 쓰지 않고 일부러 나가셨다니 그 심정이 어떠셨을까 싶었다. 

인재를 골라 잘 쓰는 것도 나라님의 능력일 텐데 '오호통재(嗚呼痛哉)라!




  대성운해(大星隕海)라 함은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다는 듯이다.

해방 후 1950년에 남해군민 7000여 명이 자진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 도로를 닦았다니 6. 25가 일어난 해라면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인데 장군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으며 내가 섰던 주위에 장군이 계셨구나 생각하니 뭉클하였다.




이락사에서 '호국광장'으로 향하며 살다가 처음으로 잎 넓은 노랑꽃을 대하고...


 가을빛이 남아 있는 '바다광장'이란 곳에 이르렀는데 멀리 앞쪽으로 '순국의 벽'에 시선이 갔다.

높이 5m 길이 200m의 공간을 한 변이 50cm인 정사각형 도자기 타일에 그림을 그려 이은 벽화였다.




 바다에서 싸우는 모습을 담았는데 섬세하고 장대(壯大) 하였다.


  장군은 생전에 영정을 남기지 않아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는데 후손들의 고증이 있었을까?

유성룡의 징비록에 의하면 말씀이 없으시고 홀로 책 읽는 것을 즐기셨다니 엄숙한 모습이셨을 듯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장군의 늠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음포 앞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판옥선 지휘소에서 수군을 지휘하는 이순신 장군의 조형물이다.

 '나라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게 인사드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순신영상관'으로 향했다.

어떤 영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입구로 들어가니 한 층 아래에 둥그런 돔이 보였다.

3D로 보는 영상이라서 안경을 써야 했으며 벽면과 지붕 전체가 스크린으로 되어 있어 박진감을 주었다.

마지막 노량해전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조선에서의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수륙 양면으로 위협을 받게 된 일본 장수 고니시는 명나라의 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퇴로를 열어줄 것을 호소하였고

린이 통신배 한 척을 빠져나가게 했음을 이순신에게 알리자 이를 격하게 꾸짖고는 관음포(觀音浦)로 도주하는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환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는 유언의 장면이었다.

의자가 누워있어서 포탄이 얼굴로 날아올 때는 손으로 막으면서 봐야 했다. 휴~~~ ^^




 영상관 앞에는 따뜻한 기온에서 자생하는 팔손이가 꽃을 피워 볼만했으며

비가 왔어도 어찌나 포근하던지 겉옷을 입지 않고 다녔다.





 호국광장 반대쪽으로 가니 아이들이 좋아할 체험이 여러 개 있었는데...

거북선을 실제 고안한 사람은 이순신의 군관인 나대용으로 판옥선 위에 덮개를 씌워 장갑함으로 만들어

배 안에 있는 사람들과 파이프로 소리를 전달하는 모습을 체험하는 곳이었다.




 또 한 곳을 보여주자면...

광양 현감 어영담은 남해의 복잡한 바닷길을 끊임없이 연구한 사람으로 이순신에게 바닷길을 알려줌으로써

조선 수군이 자유롭게 움직여 일본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는데 네모난 바닥을 고무로 엮어 뛸 수 있게 만들었고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어 담력이나 평영성을 키우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순국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이순신의 '지도자 상'을 배워보자는 장소로,

여행을 같이한 사람들이 이러저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이다. '이순신 순국공원'을 관광지로 만드는냐, 교육의 장소로

이용할 것이냐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순국하신 곳이니 교육의 장소가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었다.

방을 따끈따끈하게 만들어 겨울에도 아이들이 이순신에 대한 만화책이나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공부도 좋겠고,

시티버스를 운영해서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도 바람직한 의견이었다 싶다.




 

관음루 건너편으로는 관음포 해안이 보였으며...




 가까이 다가가니 썰렁할 것 같았던 바닷가에 해당화의 빨강 열매와 단풍이 참으로 고았다.

경상남도 남해군에 있는 관음포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셨던 바로 그 노량 앞바다다.

'이순신 순국공원'에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과 함께 오면 한가함도 즐기고 교육의 장소로도 좋을 듯하다.





  2018년 12월  6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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