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제는 중국 중부 후난성에 있는 관광도시로장자제시 일대는 중국의 국가삼림공원으로 지정되었고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는데관광산업 외에도 농업, 광업, 공업 등이 활발하고우리나라에는 장가계로 더 알려져 있단다. 1일 차에는 장가계에 도착함으로 잠자리에 들었고2일 차에는 천문산에 다녀왔으며 3일 차에는 일정을바꾸어 황룡동굴에 먼저 가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거대한 동굴이 나타나 역시 중국은땅덩어리 못지않게 동굴조차도 크다는 생각이었다. 장가계는 한나라의 건국공신인 장량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살아남은 곳이라 설명 들었지만 AI에게 물어보면 신빙성이 없다 나온다니 웃음이 나왔다. 동굴 입구에는 여러 개의 물레방아가 정겨웠는데장식만이 아닌 생활에 필요한 도구였나 싶었고, 연보..
해외여행 다녀온 지 20년이 지나 중국에 다녀오게 되었다.원래는 멀리 가려고 봄에 예약을 했으나 이란전쟁이일어나는 바람에 가까운 나라로 가게 된 셈이다. 공항에서 만나는 시간이 오후 6시였으니 집에서 2시간 걸려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여서 1시간 동안구경을 하며 헤어졌다 만나는 사람들도 구경했지만 연속극처럼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은 없었다. 밤 9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을 달려 비행기가 흔들리긴 했어도 밤참으로 기내식을 먹고 12시가 넘어(?) 장사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를 만났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말은 호텔이었으나 우리 방만 그랬을지,들어서자마자 지린내가 풍기고 우리나라의 장급 정도라실망되었지만 씻고 누우니 코가 마비되었나냄새에 적응되어 잘만 했다. 한 시간이 느린 곳이었고 아침에 일어..
저녁 설거지를 한 후 해체작업에 들어갔다.이렇게 큰 전복은 경험이 없어서 한 마리 손질하는데10분은 걸렸을 것이며 동봉된 솔로 문지르니 때가벗겨지고, 여리게 숨 쉬다 식재료로 변하고 있었다. 씩씩해서 움직임이 빨랐다면 주저했을 것이다.옆집 할머니께서 전복은 이빨이 있으니 제거해야 한다고하셨을 때 작은 전복만 먹어봐서 그런가 이빨이랄 것도없었던 것 같은데 요번에는 달랐다. 솔 끝에 달려 있던 수저로 입 부분 밑으로 깊숙이 넣어몸을 떼어내며 남아 있던 살까지 고스란히 들어내려고힘을 조절하였다. 완도댁이 전복죽 끓여 올 때 보면푸르뎅뎅한 내장 부분까지 자르지 않고 꼭 넣던데 비린내날까 터지지 않길 바라며 모조리 떼어내었다. 전복을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것일 텐데 어찌하오리!...ㅎㅎ 크니까 이빨이 저절로..
남산공원이 새롭게 조성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봐야지 했다가 친구들과의 만남을 회현역에서 가졌다.둘레길은 물론, 장충동에서 남산 정상을 넘어 남대문을지나 시청까지도 몇 번을 걸었는데 회현역에서의오름은 처음으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편안하며 경치가 수려한 남산길이 있었다니 앞으로 이 코스를 좀 이용하려는 마음이다.평소에 약속시간을 늦지 않는 편인데 지하철역까지걸어가기에는 벅차서 어떻게 갈까 머릴 굴리다지각을 하며 나름 어렵게 친구들을 만났다. 이 길은 맑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듯 파릇하니상큼해서 숨이 저절로 트였고 길 아래는 명동에 남대문이있는 그야말로 서울의 중심이건만 단지 15분쯤올라왔다고 딴 세상이 열리고 있어 즐거웠다. 누렇게 스크렁 익어갈 때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길 양쪽으로 ..
버리고 간 고무나무를 키워서 두 번 정도 잘라물꽂이 했다가 뿌리가 내리면 심어서 나눔 했는데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분갈이해 준 적 없었고 일 년에 두 번 정도 비료만몇 알 뿌려줬으며 무거워서 옮기질 못하니 물 또한흠뻑 주질 못했는데 다시 키가 150cm쯤 되어서 곁가지를 치고 잘라주어 4개의 토막이 만들어졌다.번식하려고 자르진 않았어도 생명이니 어쩌나? 자른 부분은 하얀 액체가 나오니 휴지로 닦아주고 어째서 잘랐는지 사람인 듯 설명해 줬는데 보름이나 됐을까 다시 새싹이 왕성하게 나와서 볼품없더니 기특하기도 하였다. 중심의 굵은 가지는 아직 소식이 없는데...위쪽의 어린 가지 둘은 뿌리가 실하게 나와서 역시 고목보다는 청춘의 성장이 빠르구나 싶었다. 가지 하나는 흙에 심어 엄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