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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가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간이 지나 문이 닫혀 있었다.
서촌에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는 길이었는데 옆에 그림을 보는 순간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며칠 뒤 다시 찾았다.
시원스러운 그림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이다.
대문에서 올라와 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귀여운 해태상이 반기고 작가가 수집했다는 수석과 돌확이 곳곳에서 보였다.
지은 지 80년 되었다는 이 집은 화가가 들어왔을 당시
해방과 전쟁으로 귀신 집처럼 황폐했다는데...
서양식과 한옥을 절충한 듯했으며 막다른 골목집처럼 보여 조용하고 편안하였다.
배우 이민정(이병헌의 아내)의 외할아버지가 박노수 화백이라니 놀랍기도 했다.
원래 친일파이자 조선 후기 문신인 윤덕영이란 사람이 딸과 사위를 위해 1939년에 지은 건물로,
당시 화신백화점과 보화각(현재의 간송미술관)을 지은 건축가 박길륭이 설계했다는데...
마룻바닥, 문짝, 문설주 등은 붉은색을 띠는 소나무로 만들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단다.
입장료는 3000원으로 집안에 들어가면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했다.
몇 억의 진품이 걸려있어서 그랬나 움직이는 발걸음을 봉사자들이 놓치지 않고 따라다녔다.
1년에 한 번씩 전시작품을 바꾼다 하며...
실내는 촬영할 수가 없어 예쁜 그림 몇 점 가져왔는데...
한지를 이용하여 밑그림을 그리고 파란색과 연노랑 등 원색을 즐겨 쓰신 모양이었다.
그림들이 맑고, 곱고, 투명하여 보는 내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일찍이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서예를 배워 그림에 나타냈으니 행운도 따랐음이라!
동양화 같으면서도 몽환적이며 아름다웠다 할까?
그림 속에는 대부분 남자 한 명이 등장하였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박노수 당신 자신인 듯했으며,
말(馬)이 종종 출연하는 모습에 자연을 즐기면서도 고독한 선비를 떠올리게 했다.
국무총리상, 대통령상 등 수상 경력이 어마어마 하셨고 나중에는 심사위원이 되셨다.
바깥 집 구경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ㅎㅎ...
지금은 금붕어를 키우고 있었지만 혹시 마시던 우물 아니었을까.
돌 조작이 멋스러웠고 물배추와 개구리밥이 싱그러웠다.
집 뒤로 돌아가니 뒤뜰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와...
중간쯤에서 뒤돌아본 모습인데 굴뚝이 높아 인상적이었고 시퍼런 조릿대와
대나무, 앵두나무 등 식물들이 빽빽이 자라 아름다운 정원이었으며
2층 다락방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본 경치가 차분함을 주더니 언덕배기의 정원 때문이었다.
경사가 다소 있는 뒤뜰은 집보다 높이 올라갔다.
중간에 길을 만들어 미술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내려다보는 즐거움 또한 선사하였다.
하루아침에 가꾼 모습이 아니라 석등과 향로석 등 주인의 섬세함이 전해져 왔다.
조금 더 돌아가니 전망대까지?...ㅎㅎ
시멘트로 마무리하지 않고 멍석을 깔아 산책길이 시골집에 온 듯 정겨웠다.
지붕이 직선이어서 일본식 집 같기도 했으며...
서울에서는 대나무밭 보기가 드문데 숲을 이루어 보기 좋았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올라왔을 뿐인데 서울 한복판에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이 동네가 궁에서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서촌이란다.
애초에 너럭바위가 존재했을까!
대문에서 왼쪽으로 난 길은 강화암에 일정한 무늬를 넣은 모습으로
울퉁불퉁 자연미에 정갈하였다. 묘지 앞 상석을 닮은 돌이 의자처럼 부엌(?) 뒤쪽으로
여러 개 놓여있었고 굴뚝 앞으로는 장독대가 있었다.
그림이 전시된 곳은 1층과 2층이었는데 지하가 보여 공간이 제법 넓었으며,
대를 이어 살아도 좋았을 가옥과 500여 점의 작품 및 490여 점의 고가구와 고미술 등을
기증했다니 훌륭하신 분임에 틀림없었다.
한지에 그린 그림이어서 외람되지만 언제 따라 해 봐야겠다.
2019년 9월 30일 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