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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하루 종일 낀 날이었으나 

먼지가 없다는 청명함에 정릉으로 향했다.

체력적으로나 집안일 등 거리낌이 없어야

느닷없이 떠날 수 있다.

 

 

 

 한동안 잊어진 곳이라, 왜 그랬을까?

이렇게 좋은데 그동안 올 생각을 못 했다니...

반성이 일며 어디를 보나 연둣빛 싱그러움에 

즐거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계곡도 있었나?...ㅎㅎ

계곡 하면 우이동만 떠올렸는데 

물소리에 더욱 근사한 산행이 되었다.

 

 

 

 보국문보다 조금 멀어도 대성문 쪽으로

가보자며 발걸음을 옮겼다. 숲이 한참 좋을

시기이나 더 멋진 곳으로 소풍들 갔는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정릉은 계단참이 얕고 돌덩이가 덜하였다.

이때가 오후 1시경으로 올라가는 이보다

내려오는 사람이 많았고...

 

 

 

 연등이 산 입구에서 계속 따라왔다.

덕분에 심심치 않기도 했지만 울긋불긋 없이

자연 빛 초록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했는데...

茶가 담긴 통을 보자 반가운 마음은 무엇이런가!

여러 가지 약재를 넣은 뜨끈한 한방차였다.

시주는 시늉만 하고 일어섰다.

 

 

 

 정릉 코스는 골짜기를 타고 오르니...

좀처럼 아랫동네를 보여주지 않는다.

첫 번째 내려다본 사람 사는 동네다.

 

 

 

 500m쯤 올랐나 노랑제비꽃이 보이고 

배꽃이 눈앞에 나타났으며 연다래가

날 기다린 양 고맙고 아름다웠다.

 

 

 

 깔딱 고개라 불리는 가파른 돌길을 지나자 

 

 

 

 부드러운 능선이 보였다.

보국문으로 향하는 산길 같았다.

조심스럽게 올라갔지만 무리가 오는 듯해

이따금 다리운동도 해주며...

 

 

 

 산길이 오른쪽으로 계속 휘더니 대성문이

나타났다. 북한산성의 성문 6개 중 하나로

성 쌓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문제 삼았던 

식수 해결을 위해 99개의 우물을 팠으며 

저수지를 26개 만들었다니 놀라웠다.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진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관문으로 성문 바로 위가 문루일까

1992년에 복원하였단다.

 

 

 

 성(城)에 도착해서는 앉을자리부터 찾았다.

2시간 가까이 걸려 땀도 흘렸고 배가 고팠다.

가방 속 고온에 바나나가 무르기 직전이었다.

등지고 먹으려는데 바람이 불어 추웠다.

부스럭거리며 목에 두르고 모자를 쓰고는...

크게 한 입 물어 살아났다.^^

 

 

 

 배불리 먹고서 성벽 위로 올라왔다.

이쪽 성곽을 따라 걸으면 보국문이 나올 것이고,

 

 

 

 문루에서 올라온 곳을 바라보니 까마득했다.

 

 

 

 마루에 앉아 즐기는 사람도 있구나!

망설임 없이 올라온 그대로 내려가기로 하고

손에 든 모든 것을 넣어 가방을 챙겼는데...

 

 

 

 산붓꽃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열 개가 넘는 봉오리가 모조리 피면 화려할 것이다.

모르고 갔으면 서운할 뻔했구나!^^

 

 

 

 쉬지 않고 천천히 내려왔다.

오르기 시작했던 뒷면인데 새삼스러웠다.

물은 이곳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다가 정릉천으로

나타나니 답답할지 모르지만 노자는 상선약수

(上善若水)라 하지 않았나!

물 흐르 듯 마음 따라 잘 다녀왔다.

 

 

 

  2022년 5월 3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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