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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워싼사람들

어머니와 가야금

평산 2015. 5. 15. 23:40

 적적하시겠다 싶어 가야금을 들고 어머님께 갔다.

車를 타기가 애매한 거리라 걸어서 갔더니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시며...

 "얘, 택시라도 타고 오지 그냥 왔어?"

 

 하긴, 무거워서 낑낑거리며 팔을 연신 바꾸고 가다가 한번은 쉬었다.

치마 세 개와 바지 두 개를 넣은 보따리와 함께였으니 무식하기도 했을 것이다.

가야금 연습이야 30분을 넘지 않을 것이라 온 김에 욕심을 내어 재봉질을 배우고...

바짓단과 치마길이를 잘라 간편하게 고쳐보고자 가져가게 되었다.

 

 명절이면 잘은 못해도 이런 기회를 갖고 싶었으나 며느리라 가야금만 뜯고 있을 상황도 아니고,

썩 매끄러운 연주 실력도 아니라서 차일피일 망설이다 여태 보여드리질 못한 것이다.

내 생각은 그저 단순하게 그 동안 배운 것으로 즐겁게 해드리는데 있었으니...

 '아리랑이라도 들려드리자.'

 '잠깐 다니러가 아니라 어머님과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자!'였다.

 

 

 

 

 마침 시누님도 오셔서 관객은 두 명이었다...ㅎㅎ...

 "부족하지만 아리랑 한번 해볼게요!"

그리고는 2절은 빠르게 해볼 생각으로 1절은 아주 느린 박자로 시작하였는데...

1절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울먹울먹하셨다.

 "처녀시절 나도 배우고 싶었는데 왜 못 배웠는지 몰라, 그 때는 용기가 없었어!"

 "동생들 뒷바라지해야 하니 여유시간이 없었지 뭐냐."

 

 어머니를 눈물 나시게 할 정도로 연주 실력이 있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대로 괜찮았을까?

당신 맘대로 못 하시던 시절이라 서러움이 밀려오셨을까?

이제 세월이 흘러서 하시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시니 안타까우셨을까!

 

 그래서 2절은 빠르고 밝게 해드리고 도라지타령으로 이어져 여기까지는 틀리지 않았다만...

최근 들어 배웠던 산조의 '휘모리' '자진모리'에 들어갔더니 어느 순간에 리듬이 삐끗해지며,

음을 되돌릴 수 없게 되어 혼자 다급해져서 익숙한 리듬으로 바꾸어 마무리를 서둘렀다.

10분 정도는 걸렸을 텐데 관객들은 몰랐겠지만 음이 이탈하는 순간 속에서 열이 번쩍하더니 땀이 스멀스멀!

그동안 무대에 서지 않아 그런가 가까이서 지켜보는 관객 2명에도 꼼짝 못했다.

그리고는 두 분 이야기에 너무 길게 하면 실력이 드러나니까 이것저것 맛만 보여드리다 슬며시 접었는데...

시누님이 가실 때쯤에 어렵게 가져왔으니 한 번 더하라 하셔서 다시 한 번 들려드렸다.

 "너희 친정 부모님께도 들려드렸으면 좋겠구나!"

 "가야금이 무거운데 오늘 가져갈거니?" 

 "어머니, 연습해야 해요."

 

 그리고는 어머니와 둘이서 남아 재봉틀을 펼치고 바느질에 들어갔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시다가도 얼마간은 드러누우시기를 반복하시는데 피로감도 잊으셨는지...

혼자서 바짓단을 다 하시려 해서 연습해야 한다며 기회를 주십사 애원을 했다.

 "아직은 겉옷이라 이르니 내가 하마. 다됐다, 어서 입어봐!"

어머니 앞에서 바지를 갈아입자니 거시기해서 나가려니까 뭘 나가냐고 하셔서...

안절부절하다 그 자리서 갈아입었는데 와아~~~ 몸에 딱 맞았다.

 "옷걸이가 좋아서 잘 맞는구나!"

옛날이면 쥐구멍이 어디냐 했겠지만 지금은 한 술 더 떠서 교복 입던 시절 가봉했던 사람이...

누구보다 옷이 잘 맞는다며 칭찬했던 이야기도 해드렸다.

 

 그리하여 바지 두 개 치마 3개를 어머님과 머리 맞대고 3시간이 넘게 걸려 수선하고는...

배가 고프다며 만두 30개쯤 삶아서 어머니는 10개 며느리는 나머지를 다 먹었다...^^

이제 왔었던 그대로 가야금과 옷 보따리를 들고 가야하는데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열무를 담갔는데 맛이 없어서 그릇에 담아놨는데도 못줬다, 가져갈래?" 

며느리 눈치를 보시길 레 무거운 생각은 하지 않고 얼른 달라고 하고는 낭군이 퇴근할 시간이라

전화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딩동 하고 벨이 울리며 낭군이 등장했다.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손발이 척척 맞았다고 할까?

 

 오랜만에 어머니와 며느리가 긴 시간을 재미나게 마주했다.

가야금 소리를 좋아하시니 이제부터 몇 달에 한번 씩은 들려드리자며 속으로 다짐했다...^^*

 

 

 

 2015년  5월  15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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