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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하시겠다 싶어 가야금을 들고 어머님께 갔다.
車를 타기가 애매한 거리라 걸어서 갔더니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시며...
"얘, 택시라도 타고 오지 그냥 왔어?"
하긴, 무거워서 낑낑거리며 팔을 연신 바꾸고 가다가 한 번은 쉬었다.
치마 세 개와 바지 두 개를 넣은 보따리와 함께였으니 무식하기도 했을 것이다.
가야금 연습이야 30분을 넘지 않을 것이라 온 김에 욕심을 내어 재봉질을 배우고...
바짓단과 치마길이를 잘라 간편하게 고쳐보고자 가져가게 되었다.
명절이면 잘은 못해도 이런 기회를 갖고 싶었으나 며느리라
가야금만 뜯고 있을 상황도 아니고, 썩 매끄러운 연주 실력도 아니라서
차일피일 망설이다 여태 보여드리질 못한 것이다.
내 생각은 그저 단순하게 그 동안 배운 것으로 즐겁게 해 드리는 데 있었으니...
'아리랑이라도 들려드리자.'
'잠깐 다니러가 아니라 어머님과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자!'였다.
마침 시누님도 오셔서 관객은 두 명이었다...ㅎㅎ...
"부족하지만 아리랑 한번 해볼게요!"
그리고는 2절은 빠르게 해볼 생각으로 1절은 아주 느린 박자로 시작하였는데...
1절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울먹울먹 하셨다.
"처녀시절 나도 배우고 싶었는데 왜 못 배웠는지 몰라, 그때는 용기가 없었어!"
"동생들 뒷바라지해야 하니 여유시간이 없었지 뭐냐."
어머니를 눈물 나시게 할 정도로 연주 실력이 있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대로 괜찮았을까?
당신 맘대로 못 하시던 시절이라 서러움이 밀려오셨을까?
이제 세월이 흘러서 하시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시니 안타까우셨을까!
그래서 2절은 빠르고 밝게 해 드리고 도라지타령으로 이어져
여기까지는 틀리지 않았다만... 최근 들어 배웠던 산조의 '휘모리' '자진모리'에
들어갔더니 어느 순간에 리듬이 삐끗해지며, 음을 되돌릴 수 없게 되어
혼자 다급해져서 익숙한 리듬으로 바꾸어 마무리를 서둘렀다.
10분 정도는 걸렸을 텐데 관객들은 몰랐겠지만 음이 이탈하는
순간 속에서 열이 번쩍하더니 땀이 스멀스멀!
그동안 무대에 서지 않아 그런가 가까이서 지켜보는 관객 2명에도 꼼짝 못 했다.
그리고는 두 분 이야기에 너무 길게 하면 실력이 드러나니까
이것저것 맛만 보여드리다 슬며시 접었는데...
시누님이 가실 때쯤에 어렵게 가져왔으니 한번 더하라 하셔서
다시 한 번 들려드렸다.
"너희 친정 부모님께도 들려드렸으면 좋겠구나!"
"가야금이 무거운데 오늘 가져갈 거니?"
"어머니, 연습해야 해요."
그리고는 어머니와 둘이서 남아 재봉틀을 펼치고 바느질에 들어갔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시다가도 얼마간은 드러누우시기를
반복하시는데 피로감도 잊으셨는지...
혼자서 바짓단을 다 하시려 해서 연습해야 한다며 기회를 주십사 애원을 했다.
"아직은 겉옷이라 이르니 내가 하마. 다됐다, 어서 입어봐!"
어머니 앞에서 바지를 갈아입자니 거시기해서 나가려니까 뭘 나가냐고 하셔서...
안절부절못하다 그 자리서 갈아입었는데 와아~~~ 몸에 딱 맞았다.
"옷걸이가 좋아서 잘 맞는구나!"
옛날이면 쥐구멍이 어디냐 했겠지만 지금은 한 술 더 떠서
교복 입던 시절 가봉했던 사람이...
누구보다 옷이 잘 맞는다며 칭찬했던 이야기도 해드렸다.
그리하여 바지 두 개 치마 3개를 어머님과 머리 맞대고
3시간이 넘게 걸려 수선하고는...
배가 고프다며 만두 30개쯤 삶아서 어머니는 10개 며느리는
나머지를 다 먹었다...^^
이제 왔었던 그대로 가야금과 옷 보따리를 들고 가야 하는데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열무를 담갔는데 맛이 없어서 그릇에 담아놨는데도 못줬다, 가져갈래?"
며느리 눈치를 보시길 레 무거운 생각은 하지 않고 얼른 달라고 하고는
낭군이 퇴근할 시간이라 전화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딩동하고
벨이 울리며 낭군이 등장했다.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손발이 척척 맞았다고 할까?
오랜만에 어머니와 며느리가 긴 시간을 재미나게 마주했다.
가야금 소리를 좋아하시니 이제부터 몇 달에 한번씩은
들려드리자며 속으로 다짐했다...^^*
2015년 5월 15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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