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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북쪽에도 볼만한 문화재들이 많다.
가을 산행이 있을 수락산 둘레길을 다녀오는 길에 연산군묘, 세종대왕의 딸인 정의공주 묘,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원당샘, 김수영 문학관, 전형필 가옥을 둘러보았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어 걷기 운동도 할 겸 돌아보기가 좋았는데,
갈증이 날 때쯤 원당 샘터에 도착해보니 물맛도 훌륭했지만 커다란 보호수 은행나무와 소나무, 연못 등...
공원 조성이 잘 되어 있어 맑은 공기와 더불어 편안하게 쉴 곳이었다.
다녀본 곳들 중 지난주(2015년 9월 11일)에 개방된 전형필 가옥을 올려본다.
전형필은 신윤복의 美人圖와 정선, 김정희 등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에 필요한 귀중한 자료들과...
일본으로 흘러간 문화재에 대한 수집으로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나라사랑을 실천한 분으로,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골목이 좁았고 나무가 우거져 가옥이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수집한 문화재나 그에 대한 업적들이 가득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과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주신 재산이 오늘날 강남 아파트 1000채에 해당된단다.
그런데 큰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며 자손이 없자 큰집 재산도 모조리 간송이 물려받아 총 2000채의 부자가 되었으며,
한해 수입은 요즘으로 쳐서 약 450억 정도였다는데...
당시의 경기북부에서 황해도에 이르는 길은 간송에 땅을 밟지 않으면 못 지나갔을 정도였다니,
만 석 이상의 재산을 가진 조선인이 43명 있었다니까 2만 석을 갖고 있었던 셈이라 얼만큼 부자였는지를 알 수 있겠다.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이 집은 간송이 넓은 땅들을 살피러 떠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도중에 머물렀던 집으로,
경기북부와 황해도의 대규모 농장에서 나오는 소출을 관리하는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는데 사시던 성북동 집은 소실되었고
종로에 있던 집은 재개발로 헐려서 간송 선생이 거주했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집이 되었다.
집의 오른쪽에 나있는 문을 나가면...
소나무가 늘어진 곳을 올라...
간송이 묻혀있는 곳으로 이어진다.
왕릉보다야 작았지만 소담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오른쪽이 아버지 왼쪽이 간송이었다.
門이 보여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가 무덤을 먼저 보고 들어와서 다시 마당 안쪽으로 향하게 되었으며...
당시에도 이렇게 만들어져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집 뒤쪽에 이런 門이 하나 더 있었다.
옛날 궁에서 왕비가 거처했던 곳처럼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는 곳이었다.
뒤뜰을 구경하고 있으니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안에도 구경하고 가라고 해서 마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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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이 어마어마한 재산을 들여서 우리나라의 국보나 보물들을 지켜왔기에 훌륭한 분임에는 틀림없으나,
나라에 기증하지 않고 사비를 들여 그 많은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으니 인건비에다 위험성도 따를 것이어서...
'다 내려놓지 못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별 걱정을 다 했다가...'나름 이유가 있겠지!'
당신의 그 깊은 속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있으니 용서하라며 속으로 말을 건네며 돌아왔다.
2015년 9월 18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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