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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일하시던 공간이 팔렸다.
막다른 골목에 있어 매도는 어렵다 생각하고
연세가 있으셔서 걱정이었는데 섭섭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스럽고 개운한 일이 되었다.
이어서 관리할 자식이 있으면야 형제들이
밀어줬겠는데 거리도 있어 막막했던 참이었다.
잔금이 치러지기 전 필요한 물건을 살펴하고자
아버지와 일터 앞에서 만났다. 찬바람이 불고
영하의 날씨라 썰렁했어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바람이 없어 괜찮았다. 챙길 물건이라는 것은 펜치,
낫, 사다리 등 연장위주로 층층마다 오르며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쭉 훑었는데 아버지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내셔서 내가 오길 잘했단 생각과 손수 일구신 곳이라
여기저기 쳐다보시는 눈길이 나하고는 다르셨다.
박스에 필요한 물건을 담아 아래층으로 내려온 후
잠깐 밭에 다녀오겠다며 달려갔더니 쪽파는 얼었다가
말라 누런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봄이 되면 움이 새롭게
나온다는데 아버지와 다시 올 수 있으려나? 밭은
매매와 상관없어서 오고 싶으면 올 수 있는 곳이다만...
쪽파와는 달리 시금치는 의연한 편이었다.
크기가 더 자란 것은 아니어도 모양을 제법 갖추고
지금이라도 시금치 나물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해서 추운데 장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시금치 사진을 보여드리며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릴 때 어떤 분이 충청도
사투리로 들렸다며 부녀지간이시냐, 시금치를 가꾸셨냐고,
아버지께서 따님 춥다고 걱정해 주시는 모습이 정겨웠단
이야기를 해줘 놀라기도 했다. 사진을 둘만 본 다는 게
뒤에서도 보였다니 당신 아버지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사실 아버지의 보청기 약이 다 되어 잘 듣질 못하셔서 하고
싶은 말만 했는데 누군가에겐 부러운 모습이었구나!
시금치 옆으로는 2년 된 더덕 심은 곳이 한 평 정도 된다.
3년이 되면 캐려고 하셨는데 봄이 오면 잔금 치르기 전에
캐야 하나? 굳이 텃밭을 일구지 않더라도 그냥 두면
더 자랄 것이라 이따금이라도 와서 들여다볼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생각해 보자 하셨다.
묘목을 사다 심으신 겹벚꽃이 5m 넘게 자라고
겨울이나 꽃밭이 비었지 사철 푸르거나 꽃이 있는
이곳에 아버지께서 건강하시다면 마음으로야 근처의
문수산에도 올라가고 싶고, 그동안 이곳에 일터가 있으셔서
김포평야(지금은 창고 건물이 많이 생겼음)와 한강 하류,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모습, 강화도 앞에서 강물이 바다와
합류하는 풍경, 왜척이 드나들던 바닷길, 강 건너 북한 땅을
볼 수 있어서 말없이 나를 키워줬단 생각에 감사한다.
꽃밭 주변으로는 살구나무, 앵두, 감나무,
아직 열매 맺진 못했지만 대추나무, 백일홍나무,
상사화, 장미, 접시꽃 등 손수 심으신 추억이 많으셔서...
살아계시는 동안 움직이실 수 있으실 때까지 아버지께서
궁금해하시면 동행하려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다.
2025년 2월 19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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