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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때보다 1시간 늦게 출발하여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미리 공부해가는 것은 없었고 전날 일기예보를 들여다보니 영주에는 비가 오전까지 내리며,

새벽에 기온이 8도까지 떨어진다 하여 설마하면서 두툼하게 입고 간 편이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는데 단풍이 보이진 않았지만 노랗게 물든 논두렁과...

품종에 따라 색이 다른 사과밭을 지날 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점심 무렵에 도착하여 地圖를 보고 영주가 소백산 언저리인 것을 알았다.

단양 부근의 소백산과 경상북도의 영주로 둘 사이가 아주 먼 거리인 줄 알았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산을 넘으면 바로 영주였던 것이다.




 '한우불고기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처음 가보는 '금성대군신단'으로 향했다.

금성대군이란 세종대왕의 여섯 째 아들로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이곳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

즉 '죄인이 도망갈까 봐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어 가두는 일'을 당했는데 당시 순흥부사 및 지방의 유림들과...

단종 복위를 다시 한 번 도모하다 관노가 탈출하여 한양 세조에게 밀고함으로써 순절하게 되었으며,




 그 후 순절 의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영조 18년 (1742)에 마련된 제단이었다.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순흥에 사시는 분들이 신성시하는 곳이란다.

우연찮게도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에 읽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머리를 깎고 전국 각지를 유랑했던...

생육신 김시습에 대한 강좌를 들고서 떠난 여행이라 당시에는 무서운 일이겠으나 무척 반가웠다.




 금성대군신단 바로 옆에는 '압각수'라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잎이 오리발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단종 복위운동(1456)이 실패하고 순흥도호부가 초토화 되면서 이 나무도 불탔으나 세월이 흘러 밑둥치만 남았던 나무에,

새로운 가지와 잎이 돋아 오늘날 경상북도의 보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동글동글 한이 서린 듯 은행이 얼마나 주렁주렁 달렸던지 나무 크기에 비해 열매가 작아 안타까웠다.




 오며가며 길가에는 풍성한 정취의 붉은 사과와 알알이 수수, 호박 등 농산물이 여물어가고,

비가 계속 왔다가 뚝 그쳐서 산뜻한 공기와 밝은 햇살에 더욱 청명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은행나무에서 300m를 걸었을까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이었으나 머리에 남은 것 없이 새롭게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입구부터 학자수(學者樹)로 불리는 소나무들이 멋들어지게 뻗어있었는데...

학자수란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는 뜻이란다.




 신라시대 '숙주사'가 있던 자리에 소수서원이 세워졌으니 이것을 입증하듯 당시의 당간지주가 보이고...




 적송 군락을 따라가다 보면 '죽계수'를 만나는데...

물 건너 빨간 글씨의 경(敬)자 바위가 희미해져서 자꾸만 찾아보았다.




 정문을 들어가기 왼편에는 약간 솟은 언덕(영귀봉)이 보이며...

공부하는 사람과 이별하던 장소였을까 넓적한 바위의 소혼대가 있었다.



 

 정문의 오른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중의 하나인 경렴정이 있는데,

죽계천으로 이어지는 멋진 경관을 보며 학문을 이야기하던 곳으로 퇴계 이황이 지켜보는 가운데 떨리는 마음으로,

제자인 황기로가 현판을 썼다고 한다. 얼마나 떨렸을까!...ㅎㅎ



 서원의 정문인 志道門을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분들이 바로 앞 건물 강학당에서 한복을 입고 앉아계셔서

자세하게 구경하진 못했지만 옛 건물을 사용하며 공부하시는 모습에 감동이 왔다.

건물을 쓰지 않는 것보다 자주 드나들어야 반질반질 윤기가 나며 지켜진다는데 멋진 모습이었다.




 해설사가 마이크로 설명하던 중이어서 소리가 크니 좀 멀리 떨어져 전사청까지 왔다.

제사용 그릇 등을 보관해두는 곳으로 봄가을 두 번의 제사가 있는데 마침 때가 되어 그릇을 내놓았단다.




영귀천에서 물 한잔 마시고 ...




 소수박물관으로 향하던 중 죽계천이 온통 습지식물로 덮여있어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화재 구경도 좋지만 이런 풍경도 즐겨야지!...ㅎㅎ

水草 밑으로는...




 비가 여러 날 왔다니 물이 제법 흐르고 있었다.




 박물관에 도착하여 당시 학생들의 성적표를 구경하였는데 불(不)이 8개인 경우에는 팔불이라 하여 퇴학감이었으며,

'지식 습득이 떨어지고 행동 또한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어리숙한 사람을 팔불출'이라 하여 훗날 어원이 되었단다.




 선비촌은 여기 저기 흩어져있던 초가와 기와집을 그대로 옮겨 꾸며놓은 곳으로 원래 있었던 것처럼 어울렸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공간들이 다 보이겠지만 걸어다니면 필요해도 흘릴 수가 있으니 지도를 참고해야겠다.

그림지도로 지나온 여정을 다시 살피자면 7번 금성대군신단에서 출발하여 소수서원을 지나 소수박물관을 구경하고...

이제 11번인 선비촌으로 향하고 있다. 서로 가까이 있어 걸어서 이동하였는데 어렵지 않았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과 이동했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영주에 대해 대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함이었고,

본격적인 여행은 아직 시작 되지 않았으니 어떤 곳으로 이어질까 궁금하였다.




2016년   10월  10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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