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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맛이 떨어지는데 부모님은 어떠실까 예고도 없이 친정으로 향했다.

주부가 반찬을 만들어도 그럴 상황에 아버지께서 살림을 하시니 더욱 걱정이 되고 그랬다.

도착 30분을 남겨놓고 혹시나 전화를 드렸더니 웬일이냐며...

너무 더워서 오면 너도 힘들고 두 분도 힘들어지니 절대 오지 말라고 하신다.

 "네, 알겠습니다!"


 가는 줄 아시면 붕붕카 태우러 오신다 하실 것이라 일단 대답을 그리하였다.

배낭을 메고 시장바구니에 한 손으로는 양산을 쓰고 버스 정류장에서 언덕을 올라갔다.

아스팔트 길이 화끈거렸지만 바람이 불어 그나마 좋았다.

 "계세요?"


 무슨 장사가 온 것처럼 흉내를 냈으나 귀 밝은 엄마가 먼저 큰딸이 왔나 보라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출발하려다 전화를 한 것으로 아셔서 안 올 줄 아셨는데 국수를 드시다 깜짝 놀라셨다.

더운데 어떻게 올라왔냐며...ㅎㅎ

 '부모님이 계시니 힘들이지 않고 올라왔지요.'


 마침 삶은 국수가 남았다며 한 술 떠라 하셔서 저번에 담가드린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다.

무는 치아가 약하셔서 남기시고 국물만 달랑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무가 좀 있으니 다시 안되겠냐 하셔서 기꺼운 마음으로

요번에는 무를 작고 얇게 썰어 담가드렸다.


 텃밭을 가꾸셔 싱싱한 파와 갓 찧어놓으신 마늘이 있어 무엇을 하든 거리낌이 없었다.

엄마 돌보기와 살림하는 일만 한다면 놀기나 다름없다는 아버지!

땀을 많이 흘리시는 엄마라 하루 세 번 옷 갈아입히시고, 빨래하시고

청소하시고, 밥도 하셔야지, 마트에도 다녀오셔야지, 텃밭도 가꾸셔야지, 꽃밭도 돌보셔야지,

본연의 하시는 일 건물관리에 빈 가게 임대도 놓으셔야지...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셔서 피곤에 낮잠도 주무셔야 하시고 하루가 늘 바쁘시다.


 호박잎에 쌈장을 얹어 맛난 저녁을 먹고 밤 9시 30분쯤 되니 동네가 불을 모조리 꺼서 어두웠다.

잠자리에 드시며 슬며시 내가 잘 방에 선풍기를 넣어주셔서 없어도 된다 했지만

없었으면 잠을 못 잤을 것이다. 산골 집이고 2층이라 바람이 선선해 에어컨은 필요 없다 하시더니,

넓은 옥상이 지글지글 끓어 우리 집보다 사실 더 더웠다.


 평소에는 엄마 아침 해드리고 9시가 넘어 밭에 가셨으나 네가 있으니 새벽에 일보고 오신다며

더 자라고 손으로 이야기하시고 아침 공기 속으로 나가신 아버지!

나도 집에서보다 일찍 잤으니 그 시간부터 여러 가지 집안일 도와드리고 아침밥을 안쳤는데

찌개로 무엇을 하신다 했지만 자세히 듣질 못해서 무엇을 할까 하다 북어와 멸치, 다시마로

국물을 우려내어 묵은지를 빨아 김칫국을 넉넉하게 끓였다.


 비닐에 주섬주섬 채소를 담으셔서 9시쯤 도착한 아버지께서는 네 덕분에 밀린 일 해서

개운하시다며 아침 먹자 하시는데 김칫국을 한 그릇씩 비워 기분이 좋았다.

동치미 담근 것 익었나 간 보고 점심에는 도나니 탕을 끓여먹자 하셔서 김칫국이 많으니

다음에 하시라 했더니... 아니, 해야 된다. 해 먹자!

 "여름이라 상해요, 냉장고에 넣을 곳도 마땅치 않고요."


 "아직 말복은 아니지만 너랑 같이 먹고 싶어서 그래, 너 먹이려고!"

순간 아버지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져 아~~~ 그러시구나, 그런 거였구나!

마음이 찡~~~ 해서 설거지하다 벅찬 마음에 잠시 창밖을 봐야만 했다.

우리 아버지, 정이 많고 고마우신 아버지!  




 자식들은 잔소리라 여기지 말고 부모님의 깊은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나도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고 어떨 때는 아버지가 섬세하셔서 미울 때도 있지만

여태껏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을 만나거나 듣지 못했다. 요즘 막내딸 때문에 속이 헛헛하셨는데

소식이 오길 기다리다 목이 쉬시고 기운이 없으시면서도 잔소리가 심했나 자책하시는 모습에

안타깝더니 오늘은 또 먹먹한 감동을 주셨다.


  


 찬물에 담가 피를 빼고 옆에서 마늘을 까주시는 아버지!

나는 대파와 무, 양파, 쪽파 종자 등 재료를 손질하고 새벽일 다녀오신 아버지와

아침 일을 끝낸 나, 환자이신 엄마가 달콤하게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잠깐 눈 붙였더니 설친 지난 밤 잠에 아침 피로가 풀리며 좋았다.


 정종을 넣고 부르르 끓여서 국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고기가 너무 익으면 풀처럼 되니 맛이 없다며 2시간 가까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고기를 발라내어

한 대접씩 나눠주셔서 소금을 찍어 졸깃 거림을 맛보았고 펄펄 끓은 국물에 밥 한 수저 넣어 

두 그릇을 먹었더니 땀이 쏟아져서 모두 씻기에 들어가 또 한차례 쉬는 시간을 가졌다.

여름날은 그저 먹고 쉬고 먹고 쉬고가 보약이지 싶다.


 호박과 호박잎 한 보따리, 토마토, 대파, 근대를 챙겨 하룻밤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데,

엄마가 너도 바쁘지만 자주 오라며 서운한 얼굴을 하셔서, 알았어 엄마!

금방 다녀갈게요! 침 한번 꿀꺽 삼키며 안아드리고 아버지 붕붕카를 탔다.





  2019년  8월  10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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