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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부인이 살던 뒤꼍에 대나무 숲이 있었다.

작가가 도입 부분의 대나무 소리를 표현한 부분만 읽어도 

실감이 나는 섬세한 표현에 감탄을 자아냈는데  

우리나라 1930년대의 남원땅 매안이란 곳이 배경이었으며

어디쯤 일까 지도를 찾아보니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이

가까이 흐르고 지리산자락이 뻗어내려온 마을이었다.

 

 기울어가는 이 씨 문중에 청암부인이 시집을 왔다. 

요즘으로 치면 약혼을 하고 예비신랑이 처가에서

며칠 있다가 본가로 돌아간 후 결혼날짜가 돌아오는데

그만 신랑 될 사람이 죽어서 하얀 소복을 입은 색시가

혼자서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는 시대였음이다.

 

 청암부인은 작은집 조카를 양자로 맞이하여 장손으로

키우며 아이가 울면 젖을 동서에게 얻어 먹이면

될 것 같아도 아기가 낳아준 엄마와 정이 들까 봐

미음을 묽게 쒀서 울며 달래며 어렵게 키웠다.

그 양자가 커서 다시 장손을 낳아 이름이 강모였으니,

 

 강모의 혼인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잊혀가는 전통혼례 장면 또한 자세하게 그려줘 

대단하다 싶었고 사랑 없는 혼인을 했던 시절에 

기생집으로 겉도는 강모의 모습에 안타깝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 어려서부터 소꿉동무였던 사촌누이 강실이를

마음에 두어 그만 혼인 중 사고를 치고야 만다.

아내와는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지내다 이런 일이

벌어진 날 거칠게 들이닥쳐 첫날밤이 되었고

그 하룻밤에 운명적으로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다.

물론 강실이도 사촌오라버니를 좋아했지만

함부로 행동하는 여인은 아니었다.

 

 강모는 항상 자유인을 꿈궜다.

종손으로 제약을 받으며 발 묶이는 것이 싫어서

어느 날 사촌형 강태를 따라 만주로 말없이 떠나는데,

(창씨개명과 상투 자르기가 시작되었던 시절)

그 사이 가문을 억척스럽게 일구었던 청암부인이

돌아가시고 그 사실을 모른 체 지주의 아들이어서

그런가 만주에 있어도 돈에 대한 어려움은 없이

잠시 첩이었던 여인이 따라와 함께 기거하였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서운하다 못해 기절할 일!)

 

 일본의 거짓말에 속아 우리 민족의 만주로의 이동은

처참하였다. 돈을 아끼려고 걸어가며 얼마나

보따리를 꾸렸겠는가! 삼베옷을 입고 떠났는데

도착하니 엄동설한이어서 추위에 아이의 귀가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를 지경이라 일제강점기의 온갖 서러움에

어려움이 있어도 고향땅이 낫겠구나 싶었다.

 

 작은집인 강실이네는 장손에게 재산이 내려가던

시대여서 넉넉하진 않았지만 곱게 키워진 외동딸이었다.

특히 바느질이 훌륭한 어머니를 두어 저고리와 치마를

때마다 예쁘게 입혔고 집 밖에는 나가지도 않고 자랐으나

팔자가 기구했던가! 오라버니와 그런 일이 있은 후

말이 없어지며 점점 말라가 부모의 속을 태웠다.

그 시절에 시집도 안 간 처자가 얼마나

부끄러우며 안절부절못했겠는가!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강실이 일이 은근히 소문이 나

양반과 천민의 구별이 엄격했던 시절이었음에도

신분이 다른 춘복이가 신분 상승을 위하여 흠집이

생긴 아씨 강실이에게서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데

꿈이 강렬하면 이루어진다더니 결국 춘복이

아이를 가져 섬뜩하게 만든다.

 

 이쯤이면 몸을 함부로 놀리는 여인이었던가,

의심이 생길 수 있지만 조신한 처자였음에도

그러한 상황이 생길 수 있더란다. 당시에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신분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주인남자 어른과 노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노비,

양반집 딸과 노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양반!

 

 사이사이에 역사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줘서

귀가 솔깃해지며 재밌었고, 남원이 속해 있던 백제가

삼국통일을 했어야 한다는 집착(?)이 보이기도 했으며 

후백제의 안타까움,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져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남도 사투리를 나름

해석해 보며 10권의 소설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읽었다.

 

 어떻게 끝날지 독자로서 궁금했는데 소설은 작가가

병이 들어 미완성으로 끝나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사촌지간인 강모와 강태는 청암부인이 세상을 떠날 즈음 

몰래 집을 떠났기 때문에 부모들의 원성을 샀어도

결국 일제 징집에는 동원되진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만주로 찾으러 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되고 

 

 종갓집에 홀로 남은 강모의 아내 효원은 아들을

키우며 청암부인을 이어가는데 종손은 역시 그릇이 크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강실이와 강모의 

소문을 듣고 그녀 역시 속이 편하진 않았음에도 시누인

양반집 처녀가 상민의 애를 가졌으니 크나큰 일이라 먼 거리

친정동네에 있는 절에 기거할 수 있도록 돕는데...

 

 한밤 중 몰래 절로 향하던 강실이는 춘복이를

마음에 둔 옹구네의 꾐에 빠져 부모님과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자식으로서 커다란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오도 가도 못하고 먹지 못해

기구한 목숨만 이어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세상과 하직하고 싶었으나 그 일 또한 

뜻대로 되는 일이던가! 

 

 강실이를 절에 데려다 주기로 한 방물장수가

돌아오지 않자 초초하여 강실이 아버지는 직접 절에

찾아가 보는데 절에서는 오지 않았다니 도대체

어디로 향했단 말인가! 살아만 있어 달라고

식구들이 희망하며 막을 내린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영화로 촬영된다면

양반집은 비교적 익숙한 모습이어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해도 춘복이를 마음에 두고 온 갓 나쁜

마음을 드러내는 옹구네의 연기가 가장 기대될 듯하였다.

아들 옹구를 키우는 과부로서 어찌 그리 악마와 같은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치밀하게 머리를 쓰지만

그리 살다가는 결국 천벌을 받지 않을까! 

 

 혼불이란 사람이 죽어 육체는 누워있어도

영혼이 날아가며 내는 불덩이라 한다. 남원 매안에서

지주인 청암부인의 덕(德)을 안 본 사람은 없었으니

그 영향력에 제목으로 내세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며,

최명희 작가는 이 소설 속에 자신의 모든 지식과

방대한 역사와 영혼과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민속자료들을 모아 모아 쏟아부우려 했다는

열정을 '혼불'에서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6월  7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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