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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서쪽 기슭과 북악산 북서쪽 기슭에서
발원한 홍제천을 따라 친구들과 걷기로 하였다.
예전에 한번 다녀온 길이고 물길만 따라가면
되어서 어렵지 않다.
홍제천이 숨어 있다가 밖으로 드러난 지 얼마 못 가서
세검정을 만났다. 광해군 15년(1623년) 이귀,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 지었다는데 원래 세검(洗劍)이란
칼을 씻어서 칼집에 넣고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인조반정을 의거로 평가하는 성격을 지녔단다.
물길로 내려섰더니 가을빛이 물씬 풍겼으며
노랑 달맞이꽃이 생긋 아름다웠다.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은 미술관과 함께 운영하며
10분 정도의 거리인 부암동에 있고 이곳은 석파정의
별당이 있는 곳으로 사랑채를 옮겨놓은 곳이다.
석파랑이란 전통한식집에 들어서면...
고종황제의 즉위를 기념하여 만든 만세문이 화려하게
서있어 무병장수와 만사형통의 의미가 있다기에
우리도 문을 넘었는데 암수 한 쌍의 학이 불로초를
물고 구름 위를 나는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음식점은 무진장 비싸서 뭐 올 수는 있지만... ㅎㅎ
(최하 78000원이었고 수라상은 170000원?이었음)
하긴 오늘은 친구 딸이 고시에 합격했다고 한 턱 낸다니
맛난 것 먹으러 갈 예정이어도 이곳은 아니지.^^
마당에 150년이 되었다는 감나무가 의연하였다.
계단을 오르면...
사랑채 전체가 넓진 않았어도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대원군이 사용했던 방이고 중간의 마루에서 종종
난을 쳤다 전해지며 상류사회를 엿볼 수 있는 난간과
손님은 오른쪽의 건넌방에서 맞이했단다.
붉은 벽돌의 벽과 동그라미 창문은 조선 후기에
청나라에서 유행했던 중국식 건축의 특징이다.
사랑채에서 내려다본 마당!
옥인동에 있던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 윤 씨의 생가를
옮겨와 한식당으로 쓰고, 사랑채는 석파정의 일부를
옮겨온 것으로 이 두 건물을 같은 공간에 모은 사람은
일제치하 최고의 서예가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일본에서 찾아온 손재형(1903~1981)이었다.
다시 위로 오르니 같은 이름의 석파랑이란
갤러리와 레스토랑의 현대식 문화복합공간이
있어 이곳도 온통 바닥이 돌로 이루어져서
야무진 질감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동네를 내려다보니 북한산이 수려하게 보였으며
1910년대만 해도 건물들이 없었을 것이라
풍경이 좋은 위치라 여겨졌다.
다시 홍제천으로 돌아와 홍지문을 만났는데
오른쪽은 종로구였고 왼쪽은 서대문구로 나뉘었다.
아치형의 물 흐르는 길이 다섯 곳인 오간수문이다.
북한산성과 홍지문을 이어 연결한 듯한 모습으로
햇볕 따스하고 파란 하늘에 색감이 산뜻하였다.
탕춘대성의 성문인 홍지문은 1921년에 홍수로
인하여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하며
하천(川)의 넓이가 있었고 돌로 쌓아 든든했음에도
홍수에 무너졌다니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 싶었다.
북한산 '옛성길'에서 만났던 탕춘대성과
이어지는 성벽이 산 위로 명확하게 보인다.
내부순환로가 바로 위로 지나는 곳에는
옥천암이란 암자가 있어 물길을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한 모습이었으나 물길이 좁아진 듯해서
다시 홍수가 나면 어쩌나 걱정이 일었다.
암자에 있는 보물 제1820호 마애보살 좌상이다.
고려 초기부터 유행했다는 커다란 보관을 쓰고,
전체적으로 하얀 분을 바른 모습에 입술 붉으심이
여느 부처님과는 달랐다. '보도각 白弗'이라 들었으며
대원군 부인이 고종을 위해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다리를 건너다 내려다본 옥천암 '보도각'은
물가에 위치해 있어 더욱 운치가 있었다.
평창동에서 홍제천을 따라 여기까지 산책을 하고
바로 북한산 자락길로 이어가려 했지만 점심을
먹어야 해서 부암동으로 이동하여 유명하다는
만두전골을 먹었고 가까운 곳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들렀다.
2024년 11월 27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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