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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기 전 사연이 있어 몸무게가 2kg 정도 빠졌었는데 반짝 기운이 솟아 챙겼던 배낭을 집어 들었다.

항해하는 거리가 멀어 짐은 많아지고 더군다나 반찬을 몇 가지 챙기게 되어 보따리가 커졌다.

지하철을 타고 안산역까지만 가면 바닷가로 데려다준다 들었거늘 생각했던 역하고 달랐어서 조금 늦게 일행을 만났다.

항해준비물을 산다고 마트에 들렀다가 만난 그들은.......

60대 중반의 선장님...꼭 액션 영화배우 최민수를 닮으셨는데 체구나 부드러운 인상으로 보아 그 보다도 잘 생기셨다.

50대 중반의 또 다른 캡틴...경험이 많으시고 항해에서는 믿음직하신 분, 그러나....

40대 막내로 봄에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미혼의....

그리고 서열 3위인 나......^^


 

 

 차로 한 시간여를 달렸을까.

생전 처음으로 가보는 화성이라니...무서운 살인사건이 떠올랐다가 ..들판의 노란 벼를 보게 되어 반가웠다가 바닷가에 닿았다.

화성 쪽에 요트 마리나가 있었으나 우리가 탈 배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바람을 넣은 하얀 보트를 노 저어 가야만 했는데 이때가 거의 오후 1시에 가까웠을 것이다.


 

 

 점심은 반찬이 있으니 가면서 해먹기로 하며 짐을 대충 풀고는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이고~~~어찌된 일인지 배가 움직여지질 않았다.

배 밑에 달려있는 축(?)에 얼마 전 지나간 태풍의 영향으로 밧줄들이 서로 얽혀서 꽉 붙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엔진을 풀었다 접었다, 쇠사슬을 바다에 넣었다가 도로 건졌다가를 수십 번.....

일은 진척 없이 날은 저물어갔으니 말끔한 옷차림들은 기름때가 묻어서 엉망이 되었고 기운들이 없어지고...

그러다가 엔진마저 나갔는지 시동이 걸리지 않게 되어 가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말이야.

그 사이에 침실의 눅눅한 이불들 배 위에 널어놓고 여전히 출발 준비들을 해보는데......

분위기는 점점 하루저녁을 그냥 배에서 보내고 수리를 해서 다음날 떠나자는 선장님 말씀이 흘러나오고...

난 도와준 무엇도 없이 눈치를 보며 이쯤에서 그냥 집에 돌아갈까?

의리는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눈치를 보다가...그러다가...주저앉았었다.

그 사이 힘들게 엔진은 고쳐졌지만 바다 밑은 다음날 선장님이 잠수를 하셔서 얽힘을 푸신다며 하루를 접었는데,

날이 어두워져 간이 식탁에 이것저것 먹거리들 놓고..주위의 멋진 조명에.. 배를 사서 태평양을 건너오신 이야기....

배를 만든 이에 대한 이야기...질문들...분위기가 제법 살아서 낭만이 숨 쉬는 듯 했다.

 

 

  

 날이 밝았다. 

자는데 춥기도 했고...모기향에 기침이 나오고 ..뱃사람이 아니니 잠을 잘 잤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남자들은 그냥 배 위에서 볼일도 잘 보더만....

배가 움직이니 화장실 쓰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으며 문이 고장이 나서 잘 닫혀지질 않아 불안함에.....^^

하지만 이런 문제야 배 떠나기 전 아주 소소한 것이어서 불평을 할 수도 없다.

선장님은 그 연세에 잠수복을 입으시고 바다를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오셨다...기진맥진....이셨으니....

한편에서는 축을 자르고 가자는 의견이 나오고...거금 50만원을 바다에 잠기느니 풀리기를 바라기도 하다가...

오늘도 떠나지 못하면 배에서 내려 각자 집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상황에 접어들자 결국.....

비장의 무기를 챙기시고는 다시 바다로 들어가셨다가 어렵게 출발이 이루어졌다.


 

 

 선장님은 속도 상하셨을 텐데.....

일단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니 얼마나 좋던지 말이야.

배 떠난 지 5분도 못되어 출발 전 이런 저런 일들은 몽땅 바람에 날아갔다.

보이는 하얀 보트가 뭍에서 요트가 있던 곳으로 노 저어 갔었던 배이며 보트 아래쪽에 열려있는 문이 보이시는가!

바로 아래가 또 하나의 침실이다. 낮에 햇볕이 강할 때에 열어놓고 잠시 누워서 가면 시원하고 편안했다.


 

 

 가다보면 이런 배들이 떠있었다.

홍콩이나 중국 배가 대부분이었는데 사람이 들어있는지 빈 배인지 무섭기도 했다'


 먼 바다로 나가니 섬들도 보이질 않고 ......

잔잔한 바다가 한없이 이어져서 계속 같은 풍경이라면 잠시 책을 읽어도 좋았다.

평균속도는 약 11km정도...

첫날 도착하기로 했었던 곳은 만리포 밑에 있는 어항이었는데 하루가 늦어졌으니 신진도에서 자고 가자고 했으나,

갑자기 바람이 좋아진다며 힘이 나셔서 둘째 날에 도착하기로 한 어청도까지 밤 항해를 하신단다.


 

 

 책 읽는 곳에서 바라다 본 배의 모습이다.

옆으로 보이는 뭍은 태안반도라 하는데 지도에서만 봤던 반도가 길게  이어져 갔으며......

위의 사진과 비교해볼 때 바람이 조금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수평선이 둥글게 보이는 바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다봐도 근사하다.

선장님 이외에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각자 흩어져서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배는 바람에 따라 돛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지만 모터를 계속 사용해서 움직였으며......

햇볕을 좋아하니 여러 날 온 몸으로 받아서 살균은 넉넉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태안반도.....

만리포를 지날 때에는 해수욕장이 길게 늘어져 보여서 신기하기도 했다.

항공사진을 찍던 당시가 아니었으니 겉으로의 모습을 대하고 그 옛날 어떻게 지도를 만들었을지.....?

대단했어라!


 

  

 반도의 끝 부분일 것이다.

항해는 자동으로 가게 설정을 해놓아서 키를 움직일 필요는 없었지만......

배가 자고자 하는 방향에서 조금 벗어나면 착오가 일어났다며 소리를 내보내니 자꾸 수치를 바꾸어주셨다.

그러니 키는 스스로가 움직이는 모습이어서 마치 보이지 않는 로봇이 조정하는 것 같았다.

저번에는 수동을 경험했었는데 재미는 역시나 수동인 듯......^^

저녁 무렵이 되니 멀미가 나는 듯 힘이 없고 속이 편치가 않아 잠시 누웠다.

배가 고파서 그랬나? 끓인 밥에 오이지무침을 얹어 먹으니 기운이 나서 다행이었다.

고맙습니다!


 

 

 바다는 해만 지면 엄청 추워졌다.

다들 두툼한 옷으로 바꿔 입고, 난 그것만으로도 모자라...목도리를 칭칭...모자도 쓰고...담요로 무릎을 덥고....

아~~~시간이 갈수록 다들 피곤해져 갔지만 밤 항해를 해봤음은 얼마나 행운이었나!

돛 옆에 반달이 보이시지요? 멋진 황홀경에 빠져보았으니.......

눈앞에 찬란한 물빛이 가로 지르고...그 사이 검푸른 파도가 출렁이고...하늘에는 별들이 와글와글......

그러다가 이따금 머리가 무거워지며 눈이 감기기도 했는데...아마 항해시간이 12시간을 넘었을 듯하다.

어청도에 다가오자 긴 항해에 아침에 잠수까지 하신 선장님 역시 얼마나 피곤하셨던지 신경이 날카로워지셔서는...

마실 물도 떨어졌다며...남아 있는 물은 당신만이 드실 물이라 (?) 하시고, 소리를 버럭 지르시기도 하셔서

어쩌면 저렇게 멋지게 생기신 분이 갑자기 변하실까...?? 서로들 눈치만....?

열지 않은 물을 눈앞에 두고 마실 수 없다 생각하니 갑자기 더 건조해진 목구멍에 침 한 방울 삼키며 잠자리에 들었다.

설마 내일 아침까지 견딜 수 있겠지?

 

 

 

 

2012년    9월   26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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