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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에서떠남

특별한 약속...

평산 2014. 5. 11. 14:37

 山 하나를 다녀오면 하루가 다 가는데......

서울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산악마라톤'이 있었다.

새벽 4시에 불암산을 출발해서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의상능선을 지나

구파발에 오후 5시까지... 그러니까 총길이 47km를 13시간 안에 들어와야 합격이란다. 

어떻게 보면 무식한 대회인데 참가를 한다는 친구가 있어 마지막

북한산코스에서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먹고 싶다기에...

아이스크림은 몰라도 콜라정도야 공수하겠다며 별스런 약속을 했다.

 

 

 북한산 정상에서 만나자는 것을 그곳은 얼마 전에 다녀왔으니 재미가 없다며...

시작하는 곳은 같을지라도 '진달래능선'으로 오를 것이니

해발 600m가 조금 넘는 大同門에서 만나기로 했다.

허나, 언제쯤 그곳을 지날지 알 수 없다며 일찍 가서 기다리면 지루할 것이라

앞산인 도봉산에 오를 때 문자를 주겠다하더니만...

달리다가 잊었는지 소식이 없어 대충 시간을 정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우이동에 도착해서 아스팔트를 조금 오르다보니 비로소 어디냐고 소식이 온다.

자신은 북한산을 오르기 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며...

 "나도 우이동에 있는데?"

그러니까 지금 같은 곳에 있어서... 밥 먹는 곳을 찾아가면...

친구 얼굴을 몇 달만에 보게 되는 셈이지만,

먹을 것을 높은 곳까지 배달하는 것이 오늘의 나의 일이며 콜라가

미지근해지더라도 大同門에서 마셔야 빛을 발휘하는 것이므로,

나는 나대로 山을 오르겠다고 왔으니 밑에서 만나면 올라갈

이유조차 희미해져 재미가 없어질 것이라...

서로 조율하다가 결국 처음 약속처럼 大同門에서 만나기로 했다...^^

 

 

 진달래능선은 처음 100m만 가파르게 오르고 나면 능선길이라 편안하게 이어진다.

바위가 많은 북한산에서 바위가 하나도 없는 이 초록봉우리가

계속 따라왔는데 무슨 사연일까!

 

 가방에는 포도 한줌과 사과, 토마토 1개씩 그리고 콜라와 비타민 두개....ㅎㅎ...

작은 보온병을 갖고 가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쭈쭈바를 하나 사서

눌러 넣고 김밥 두 줄과 물을 담았다. 먹을 것을 이렇게 많이

가져가기는 여태껏 처음 있는 일이다.

 

 사진기를 호주머니에 넣고서 담고 싶은 곳은 대체로 담았지만...

행여 도착이 늦기라도 해서 만나지 못할까봐 물은 먹고

싶어도 배낭을 내려야하니 꾹 참았다. 높은 곳에서 만나는 기쁨도 있겠지만

혼자서 오르며 즐기는 산길도 겁나게 아름다웠는데...

나중에 보니 초록봉우리가 가까워지며 사라지자 목적지가 나오는 듯했다.

 

 

 와~~~~

두근두근 ....

북한산성으로 둘러쌓인 大同門에 다 왔는데 친구가 행여 지나갔을까?

한 번도 쉬지 않고 왔으니 땀이 났지만 모퉁이만

돌아가면 만난다는 사실에 기운이 솟았다.

 

 

 

 두리번두리번...

휘리릭~~~한 바퀴를 대충 살펴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도착했다고, 어디 있냐고...문자를 보내려 해도

서비스지역이 아니라며 소식이 날아가질 않는다.

이때가 오후 12시 31분으로 시작지점에서 57분이 걸려 올라왔으니

빠른 편이어서 지나치지는 않았을 듯한데...

우선, 물 한 모금 마시고 기다려보자!

 

 대동문 광장은 무척 넓어서 여기저기 돗자리를 깔아놓고 점심들을 먹는 모습이었다.

서서 기다리다가 그늘이 있는 돌에 앉았는데 해발고도가

있으니 그런가 바람이 불어 땀이 후딱 식더니...

10분도 안 되어 춥기 시작해서 햇볕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가끔 가슴에 번호표를 단 사람들이 지나갔다. 

대부분 40~50대 사람들로, 젊은이들이 참가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으며...

그들이 지나게 되면 내가 앉은 곳과 가까운 곳에서 어떤

아저씨가 번호표를 확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태껏 달려왔을 그들은 몸이 지쳐가고 있을 텐데도

한명도 쉬지 않고 바로 그곳을 빠져 나갔다.

기다린 지 30분이 지나가고 양지바른 곳에 앉았어도 추워서

움직여야 할까 말까 혼자서 무엇을 먹기도 그래서 조금만 더 기다리다

내려가자고 마음을 추스르는데...

앗!

 

 

 

 "반가워...ㅎㅎ..."

 "오다가 무릎을 다쳤어!"

상처가 난 다리를 보여주는데 아이들 마냥 무릎에 타박상을 입어서...

속으로 연고도 필요하겠구나!

 

 "콜라줄까?"

 "응..."

 머물지도 못하고 걸어가며 먹으니 따라 걸으며 포도를 건네주고

5분이나 이야기 했을지...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할 때, 

山 4개를 넘어와 지친 걸음이었지만...그것도 빨라서 따라갈 생각을 못하고...

어서 가라며 금새 헤어졌다. 고글을 쓰고 있었는데 벗을

기운도 없어서 얼굴도 못 본체 말이다.

 

 잠시 따라 걸었던 산길에는 낮은 곳에서는 이미 다 져서

볼 수 없던 연다래도 피어 있고... 분홍빛 병꽃나무와

하얀 고광나무(?)꽃이 바람에 휘날리며 산성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다소 허탈함을 안고 내려오다 뒤이어 올라오는 선수들에게

들고 있던 포도를 나눠드리니 꿀맛이라며.....^^

 

 

 

 

 혼자서 내려오다 풍광 좋은 곳이 있길 레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잠시 앉아서 깁밥을 몇 게 먹고... 혹시나~~~하며 보온병을 열어보니

쭈쭈바가 녹지 않고 들어있어서 놀랬다.

달리는데 무겁기도 하겠지만 기념으로 들려줄 것을...^^

 

 힘들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아름다운 계절이라서 북한산을

여러 날 드나들며 기쁨을 누렸다. 높은 곳에서의

짧은 만남은 이벤트였다고나 할지...ㅎㅎ...

나보다 2배의 길이를 더 걸어간 친구는 나중에 알고 보니

비슷한 시간에 내려와 11시간 17분이 걸려 완주했단다.

다리도 다쳤는데 정말 빠르긴 하다.

 

 많이 고마웠다며 언제 밥을 사겠다는데...

무리가 될까봐 이제 山 을 5개 넘는 대회는 하지

말았음 좋겠다고 했더니...말이......없...다.

하긴,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가 있으니 또 자극을 받기도 하지!

내년에도 올라간다는 소식이 오면 싱그런 계절에 운동도 할 겸

응원하겠다고 특별한 약속을 해야겠다.

 

 

 

 

 2014년  5월  11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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