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늘상에서떠남

언제 올래?

평산 2014. 10. 20. 16:53

 

 집에서 떠났다고 문자를 보냈으나 소식 없으시고...

도착해서도 평소와 다르게 나와 계시지 않아 무슨 일이 있으실까 올라가봤더니,

유리창 너머로 서계시던 아버지께서 날 발견하시고는 힘없이 나오셨다.

방금, 바라던 일이 성사되지 않아 가슴이 철렁해서 그리되셨다며......

그러기에 일을 그만 두시고 편안하게 사시길 바라지만 당신 뜻이 그러시다니 어찌 하리!

 

 점심을 먹으며 응원해드리고 설거지를 서둘렀다.

山을 못 가게 하기위해서 아버지께서는 같이 고추 따러 가야한다 하시고...ㅎㅎ

엄마는 힘들 테니까 앉아서 이야기나 하잖다.

하지만 고추는 다 따서 보따리까지 챙겨놓으셨고 지난번에도 가지 말라 하셔서 못 올랐으니...

바람이 많이 불어 엄마 옷을 빌려 입고 혼자서 산길을 올랐다.

 

 

 

 그런데 이런 이런!

성벽 옆으로 난 길이 어디로 갔을까,  사람 키만큼 풀들이 자랐으니...

긁힐까봐 손은 주머니에 넣고 발걸음을 힘차게 디디며 군인처럼 헤지고 나갔다.

도깨비방망이 씨가 따라가고 싶은지 달라붙었는데 근사한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고구마를 삶아놓으셔서...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한 끼가  될 수 있어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되었지만,

극구(極口) 밥을 먹여야한다며 어찌나 우기시는지.....

그 마음 알지만, 예전에 부모님 배 곯던 시절도 아니고...

억지로 분량을 넘어서 먹어봐야 배만 나오는 시기라는 것을 아실 텐데 말이야.

 

 

 

 허나, 먹어야 서운치 않으시겠다니 가득 채우고 올랐으니까 가파른 이곳에서 힘을 좀 썼야했다...ㅎ

천천히 걸었지만 날이 좋아 땀을 흘렀으며, 부모님 약해지시는 모습에...

이것저것 사다드리고 싶었지만 내민 손이 초라해서 부끄러웠던 마음이...

 

 

 

 상큼한 바람과 아름다운 풍경에 금세 후련해지기도 했다.

한강과 임진강과 바닷물이 합쳐져 '염화강'이라 불리는 이곳은 물 건너 강화도가 보이며 언제봐도 멋진 곳이다.

특히, 아무런 연락 없이 드나드는 서양 배들을 관찰했던 문수산은 전략적 요충지였음이 한눈에 드러난다.

조금 일찍 왔으면 누런 논두렁과 초록이 대비되어 더 아름다웠을 텐데......

 

 

 

 남북이 너무나 가까워서 올 때마다 氣가 막히다며...ㅉㅉ

물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파주인데 어제 총싸움이 있었다고 하네!

북쪽은 추수를 마쳤는지 논이 훵~했으며 산에 나무가 많지 않았고...

남쪽은 나무도 많고 강바람 막아주는 언덕 너머로 집들이 옹기종기 평화롭다.

 

 이곳에서 만나는 분들은 누구나 한 마음으로 통하며 잠시나마 애국자가 된다.

오를 때마다 좋은 분들을 만나 뵈었는데 오늘은 우연찮게도 우리 집 근처에 직장이 있으신 분으로,

강화도에 출장 나오셨다가 시간이 남아 문수산성에 오르셨단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신다 해서 얼마나 반갑던지...ㅎㅎㅎ

부모님 일터인 이곳에 오기까지는 산 넘고 물 건너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니 사실 서울~대전 간보다도 멀다.

1시간쯤 절약될 텐데...들고갈 보따리도 있으니...갈까... 말까...^^

 

 내려왔더니 아버지께서는 기분이 다소 풀어지셔서 북한의 김거시기 만나고 왔느냐 농담도 하시고....

모르는 사람과는 어렵다며 밥 먹고 천천히 가라하시는데 금방 어두워져서 그렇더라도 30분이나 더 있게 될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덕분에 편안히 도착하여 전화를 드리니 다시 언제 올래? 하신다...ㅎㅎ

 "곧이어 찾아뵙겠습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2014년   10월   20일  평산.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