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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에서 행사가 끝나고 1년 만에 하룻밤 자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일어나셨으니 이불 속에서 있을 수 있나? 시계를 봤더니 5시 50분이었다.

평소에 쿨쿨 자는 시간이지만 세수하시고 출근 준비하시는 아버지 아침 차려드리고...

다시 한숨 잔 다음에 엄마랑 아침을 먹었는데 행여 산에 갈까 미리 말리셨다.




 안개가 짙게 껴 비가 올지 모른다는 말씀인데 오전 11시가 넘어도 비는 오지 않아...

인절미와 사과 반쪽, 물, 달콤한 약과를 챙겨 집을 나섰다.

원래 자고 올 생각을 못해서 등산복이 있었겠나! 모자도 없이 바람 불어 스카프 하나 두르고는

그동안 몇 번 올랐던 길을 달리하고 싶어서 강화대교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한 정거장이면 될 줄 알았는데 문수산 올라가는 곳을 물으면 다들 버스 타고 가야한다 겁주고,

바로 뒤가 문수산이 건만 막다른 골목이 나오기도 하더니 한참만에 어떤 아저씨가 등산복 차림으로 오시길래

어찌나 반가운지 '평화누리길 2코스'에 들어서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 가장 북쪽에 있는 둘레길 중 하나여서 목이 잠기며 감동이 밀려왔다.

생각지 못한 누리길을 만났으니 여기서 되돌아간다고 해도 후회 없을 만큼 기뻤다.

30대에 수영 배울 때는 물속에 미끄러져 들어가며 전생에 물고기였을까? 착각했는데...

요번에는 안개에 휩싸인 촉촉한 숲에 흡수되는 것 마냥 발걸음이 땅과 밀착됨을 느꼈다.




  내 앞에는 한동안 아무도 없었다.

미투 운동 이후에 솔직히 마음 편해진 게 사실이다.

항상 조심해야겠지만 내 국토를 한 발짝 더 디디겠다는 생각에 보호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10분쯤 올랐을까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문수산 성벽을 만났다.


 


 다녔던 길은 성벽이 잘 정리되어서 돌덩이가 흐트러진 곳을 못 봤는데...

산성의 총 길이가 6123m 에서 남아 있는 부분이 4640m라니까 유실된 곳이 1km가 넘는 셈이니 이런 곳도 있겠지!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해 숙종 20년에 쌓았다는데 2014년 고려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는,

산 정상 부근을 빙 둘러싼 약 300m의 '퇴뫼식 산성'에서 성벽 주변의 흙으로 만든 유물들을 발견하여

이를 근거로 추정한 결과 이미 삼국시대에 성을 쌓았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첫 번째 전망대에 다다르니 오른쪽으로 가깝게 '강화대교'가 보였다.

이곳은 이미 임진강과 한강이 만난 곳으로 특히나 강화대교 오른쪽은 '염화강'이라고도 부르는데,

안개 때문에 뿌옇게 흐려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지형이 숨어 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중간에 돌출한 작은 산 앞쪽에서 오른쪽으로 빙 돌아 누리길을 발견하였는데...

경사가 급하지 않아 힘들지 않았으며 이곳에서 두 사람을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아카시아 나무는 없었으나 숲에서는 달달한 냄새에 비릿한 듯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바다에서 퇴적된 곳이 융기하여 이루어진 山 이어서 모래, 자갈, 진흙이 뭉쳐진... 

역암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완만한 작은 산 하나를 넘자...




 다녔던 익숙한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걷지 않았던 길은 뿌듯함을 주더니 걸었던 길은 따스한 평화로움을 주었다.



 

 '평화누리길 2코스'는 문수산성 남문에서 시작되어 이곳 '남아문'을 지나 왼쪽으로 계속 내려가는데,

이곳에서 애기봉까지는 6.2km로 여기까지 올라와 산 정상을 밟지 않고 지날 수 있을까?

넉넉잡아 20분 정도 오르면 되니 말이다.


 다음에는 애기봉이나 누리길 1코스를 가볼까 생각하며 앞으로 향하는데...

헬기장이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고 산 정상이 보여 반가웠다.




 보기 좋게 뻗어 올라간 문수산 척추에 산성을 지키려는 듯 서어나무가 몇 그루 보초를 서며 굽어봄이 싱그러웠으며,

산성 위로 걷다가 위험 구간이 나오면 아래로 내려가 숲길을 걸어 걸어...




 정상 '장대'에 올랐다.

제법 웅장하고 늠름한 모습인데 주위를 둘러보려면 동그랗게 원형만 있을 때보다 답답함이 있었다.

안개만 낀 것인지 미세먼지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걷히지 않았으며...

어떤 아저씨가 장대 아래에서 쑥을 뜯고 있길래 나도 약쑥인 양 한 줌 뜯고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왔던 길을 되돌아 보고...



 북한이 내려다보이던 곳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 산봉우리 건너편을 살폈다.

일단 확성기에서 나오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저격수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덜했다...ㅎㅎ

산봉우리 아래에는 강물이 만나 흐르고 있을 것이며 헐벗은 북한 땅이 통일을 꿈꾸려나!

아무도 없는 전망대에서 물 마시고 사과 먹고...




 내려올 때는 남아문(홍예문)을 지나 몇 번 다녔던 가파른 길을 택했더니,




 보이지 않았던 철쭉이 잘왔다고 반가워하는 모습으로 안아주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져 쓸만한 나무 자루를 찾아 지팡이 만들고,

심심해서 인절미를 하나 입에 물었는데 고소하고 쫄깃하니 어서 먹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게 아닌가?

 '햐, 맛있다. 배가 고팠나?'


 내리막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山을 독차지 한 것이다.

안개가 다소 걷히며 강한 햇볕이 내리쬐어 스카프로 얼굴을 돌돌 말고 내려왔더니...

엄마는 된장국을 끓여 놓고 기다리고 계셨네!






  2018년  5월 20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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