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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여행으로 선비의 마을 안동에 다녀왔다.

처음 가보는 봉정사와 고택에서의 하룻밤이 무척 끌렸는데...

자는 곳이 변경되어 실망이었으나 마침 축제기간이라 같은 곳이라도 볼거리가 다양했고...

하루에 10000보 걷기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운동까지 겸했단 생각이다.

집 떠나 추수하기 전 노란 들판이 보기 좋았다.



 여정(旅程)이 지도상으로 모조리 보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몇 군데를 짚어보려는데,

우선 병산서원으로 가보자!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구름이 잔뜩 끼었으나 안동에 도착하니 맑음이었다.

배롱나무가 지는 시기였음에도 남아있어 다행스러웠으며,

예의를 갖춘다는 뜻의 서원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이 반가웠다.




 문으로 들어가기 전 부시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도 정갈했고...




 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광영지(光影池)는...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하자는 의미의 작은 정원이었다.




 서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인 만대루(晩對樓)다.

동서남북이 확 트인 공간으로 앞에 흐르는 낙동강과 주위의 수려한 경치가 유생들의 휴식을 돕고,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데 힘썼던 장소로 8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



 

 각각의 기둥은 하나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밑 기둥은 구불구불한데 위의 기둥은 곧게 뻗었음을 볼 수 있다.

구불구불했던 스스로를 몸과 마음의 수양으로 곧게 펴라는 의미가 들어있단다.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20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다니 널찍하면서 아름다운 공간이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선조 8년에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왔다는데,

돌아가신 후(1607년)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사당을 세우며 정식 서원이 되었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였단다.




가까이 가보면 입교당이라고 쓰여있는 마루 양쪽에 지금의 교무실과 교장실이 있고,

유생들이 교육을 받던 일종의 강당으로 병산서원의 중심에 위치한다.




 입교당에서 내려다보는 왼편으로는 선배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가...



 후배들이 기거하는 서재(西齋)가 오른쪽에 있으며 건물마다의 구멍은 통풍을 위한 것일 듯하다.




 만대루나 입교당이 겨울에는 썰렁했을 텐데 아궁이가 보여 기숙사는 따뜻했겠다 싶다.




 입교당 뒤쪽에는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존덕사가 있으나 문이 잠겨있었고,

몇 백 년이 됐다는 배롱나무가 여러 그루 화사했는데 배롱나무는 겉과 속이 똑같은 모습이어서,

한결같은 선비가 되라는 뜻을 나타낸다 하였다.


 


사당 오른쪽에 서원에서 찍어낸 각종 문집이나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있으며,




 서원을 관리하고 유생들의 식사준비 등 생활전반을 뒷받침해주던 고직사에서 요즘은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단다.

주위에 건물이나 가로등이 없어 맑은 날에는 별이 쏟아진다니 아쉽구나, 아쉬워!




 고직사앞 달팽이 모양의 서민 측간(廁間)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어 정다웠고,

낙동강이 흐르는 그 뒤로 듬직한 병산(屛山)이 있었으니 이보다 평화로운 곳은 어딜꼬!




 언제 다시 올까 뒤돌아본 서원은 푸른 언덕에 햇살 좋고 그림 같은 집이었으니,

공부가 잘 되었을까 다시 한 번 궁금해지고...




 복례문을 나오자 사랑의 증표를 나타낸다는 모과나무가 앞마당에 많았는데,

점잖은 장소에 하트가 있어서 예쁘고도 오묘하였다.




 햐~~~

모과들이 나도 사람 구경 좀 하자고 웅성웅성...ㅎㅎ...




  '천사나팔' 또한 서원 입구에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눈으로 많은 수확을 했다.

시간이 넉넉했으면 낙동강 앞에 앉아 멍 때리고 싶었는데...ㅎㅎ...

안동의 명물 간고등어 먹으러 간다니 얼른 따라나서야겠지!




  2018년  10월  2일  평산의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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