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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에서떠남

신성리 아침산책

평산 2018. 8. 12. 12:14


 새벽에 나가고 싶은 마음과 그냥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었다.

편안하게 있다 나가자니 기본이라도 챙겨 입어야 해서 절차가 복잡해졌던 것이다.

꼬마까지 마루에서 5명이 잤는데 언뜻 한 명이 비어있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풀 뽑는다더니 집 떠나왔는데도 습관처럼 일어났는가 보다.

어딜 갔을까! 마당은 고요하기만 한데...




 마침 그녀가 윗동네를 다녀왔다며 아랫동네 산책 가보잖다.

안 나가면 섭섭할 것 같아 웃옷을 하나 걸치고 따라나섰다.

 "안 더워?" 더운 게 문제가 아니라 사실 안 보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더 중요했다.


 대문을 나가자 제법 커다란 나무에 노란 꽃이 불꽃놀이 터지는 모양처럼 복슬복슬 달려있었다.

남쪽에 내려오니 못 보던 나무도 구경하는구나!




 다시 몇 걸음에 서울에서는 두 시간쯤 차 타고 나가야만 구경하는 흙이 나타났다.

황토 고랑에는 콩 중의 왕인 서리태가 비가 여러 날 오지 않았어도 제법 씩씩했다.

밭 가운데에 대추나무가 보여 다가갔더니...




 햐~~~

탐스러운 알맹이들이 아침햇살에 빛났다.

하룻밤 신세 진 집에도 대추가 있었지만 가물어서 그런지 씨알이 작았는데...

원래 품종이 실해서 그럴까 달짝지근하며 아삭거림이 머지않아 보였다.




 마을 입구의 말끔한 정자에는 냉장고가 떡~ 하니 보여서 와우~~~ ♬

드문드문 집이 있던데 모임이나 있으면 모를까 앉아 있을 시간이 있으시려나?

문득 배낭여행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룻밤 괜찮겠다 싶었다. 이장님께 보고한 후라면 더욱 좋겠고...ㅎㅎ

햇살이 바짝 나와 마루에 앉아 있을 테니 나보고 다리를 건넜다 오란다.




 호박 얼굴 앞이 동쪽이겠구나!

한동안 고운 선을 만들며 뽐냈을 호박이 날이 팍팍하여 살짝 옆으로 비켜가는 듯 안타까웠는데,

나에게는 이 또한 멋진 풍경으로 다가왔다.




  봄색시 같은 연둣빛으로 벼도 보기 좋았고...

이른 아침 나팔꽃이 싱그러웠어라!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자 물가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과

영산강 줄기인가 호수인가 구름을 안고 잔잔했는데...




 강폭이 제법 넓었으며 멀리 보이는 낮은 산들과 어우러져 마음에 평화를 주었다.

그러니까 요즘 유행하는 걷기 명상이었다 할까?

고개를 아래로 떨구니 물이 흘러가는 것은 보이지 않았으나 개구리밥들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었다.

 '너희들은 앉아 있어 모르지? 난 항공사진을 보는 것 같거든!'

거머리가 풀들 아래서 간지럽히지나 않을까 상상이 가고...ㅎㅎ...

강물인 줄 알았더니 다리를 건너자 '지석천'이란 팻말이 보여 영산강 하류를 가늠해보았다.




 8월 초인데 참깨는 벌써 수확을 하였고...

작은 도랑을 건너 오른쪽으로 보이는 집이 그럴듯해서 다가갔더니...




 이른 아침이건만 물뿌리개가 푸시푸시 돌아가고...

수령이 보이는 배롱나무와 연초록 잔디밭, 낮고 뚱뚱한 나무들이 귀엽게 경계를 이뤘는데,

보기 좋구나 했더니 아주머니가 현관문을 열어 보셨다.

 "집 구경 하고 있어요!"




 머리를 매만지며 부끄러운 듯 세수도 하지 않으셨다는 아주머니는 기웃하는 우리들에게 문을 열어주셨다.

쉼터를 덮고 있는 식물이 으름나무라 해서 유심히 바라보던 터였다.

우리 또한 세수는 물론 머리는 부스스에 일어나자 마자 나가서 옷도 우스웠는데...ㅎㅎ


 생각지도 않게 문을 열어주셔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놀랍기도 하고 감동이 왔었다.

혹시나 집을 자랑하시고 싶어도 이른 아침에 낯선 사람들 아닌가!

선뜻 커피 한잔 주신다기에 밥 먹기 전이라며 사양했더니 그 사이 아저씨는 광주로 출근하시고...

우린 여유 있는 집 구경에 주스와 바나나를 염치없이 얻어먹었다.

인심이 살아있음을 체험하며 나였으면 문을 열어줬겠는가 반문(反問)이 따랐다.




 전원주택에 살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무엇이 잔디밭에 있었는데 보이시는가!

애초에 높낮이를 달리하여 꾸며진 곳으로 알았으나 잔디를 차별 있게 깎아 만들어주셨다니,

나이 들어도 이런 낭만으로 살면 福을 받겠더란다.

잔디 위의 하트라니 멋진 작품이었다...ㅎㅎ...




 날이 더워 아무런 일정 없이 친구 보러 갔다가...

근사한 구경에 많은 이야기 나누고 깨닫고 누리다 맑은 茶 한 잔으로 마무리하였다.

마음 써준 친구에게도 집을 내주신 시댁 어른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2018년  8월  12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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