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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의 가장 깊숙한 북쪽에 위치한 건청궁은...

궁 안의 궁으로 불리며(청와대가 바로 뒤에 있음)

사대부 주택 양식으로 지어졌다.

 

 왕의 공간인 장안당, 동쪽 왕비의 공간인 곤녕합과

별채인 복수당으로 구성되었는데 9월 18일까지 고종과

왕비가 살던 공간을 특별히 개방한다고 해서 다녀왔다.

 

 

 장안당 입구에서 신발을 바꿔 신어야 했다.

사람들이 많으니 입구와 출구가 확실하였다.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에 지어져 초기에는...

역대 임금의 초상, 왕과 왕비 왕세자 빈의  의례용 도장,

임금의 글씨를 보관하고, 고종이 경복궁 후원(現 청와대 자리)

에서 행사가 있으면 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들러 

신하들을 만나기도 했던 장소였다.

 

 그 후로 경복궁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던 시기는

1885~ 1896로 왕비가 1885년에 을미사변이 일어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고 고종이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이후로는 헐렸다가 1938년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지었지만 다시 철거한 후 2006년 옛 자료에 의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단다.

 

 

 장안당을 들어가자마자 대청에는 일월오봉도와

어좌를 놓아 왕의 집무실로 사용하던 공간이 나왔다.

신하들과 외교관을 접견했던 곳이다.

 

 

 바로 뒤쪽으로는(정화당) 고종이 생활하던 공간으로 

4칸의 온돌방인데 각 칸은 필요에 따라 문으로 

막거나 개방할 수 있었으며 이곳은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책 읽는 곳 바로 옆 침실은 참으로 쓸쓸하였다.

왕이 쓰는 개인공간(정화당)은 약 6평(?) 정도로 좁았고

홀로 자는 작은 침대로, 만약 둘이 자는 침대를 놓는다면 

발 디딜 틈 없겠으며 바른 정치에 오래 살으라는 좋은

글귀의 병풍이겠지만 글씨 크기만 봐도 넓은 곳에 놓아야지,

글씨에 눌러 귀신이 나올까 섬뜩하였다.

 

 

 건청궁에 들어설 때 글씨가 보였던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이곳에 서면 담 넘어 

건너편 향원정의 가을 연꽃이 보인다니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사람이 많아 바쁘게 담아보았다.

 

 

 장안당의 옆모습!

처마와 문살만 봐도 참으로 섬세하며 아름다웠다.

 

 

 이쯤에서 건청궁을 들여다보자면,

고종이 머문 장안당과 왕비가 있었던 곤녕합은 중간에

복도로 이어져 궁녀들의 생활실과 부엌이 있었다.

 

 

 왕과 왕비를 돌보며 생활했던 궁녀들의 생활공간은

지도에서처럼 복도로 이어져 왕비의 공간으로

갈 때까지 몇 개의 작은 방으로 이어졌었다.

 

 

 궁녀들이 머물렀던 곳!

 

 

 이렇게 찻잔을 놓고 여유로운 시간을 궁녀들이

가졌을까만은 차려놓은 모습이 정갈하였다..^^

 

 

 복도를 지나 명성황후가 살았던 공간으로 넘어갔다.

경복궁의 왕비가 머물렀던 교태전에 소나무 그림이

있었던 것처럼 이곳도 그림으로 시작되었고,

오른쪽으로 찻잔과 의자가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이런 모습으로 왕비의 알현실이었다.

당시의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참조해 재현했다고 하며 그의 글을 읽어보자면,

 '노란색 비단이 드리워진 수수한 방으로 안내되어 

우리는 곧 커피와 케이크를 정중히 대접받았다.

그 후 저녁식사 때는 상궁이 궁중역관의 도움을 받아

아주 아름답게 꾸며진 식탁을 앞장서...... '

 

 알현실 바로 왼쪽 공간이 민비가

시해되었다는 옥호루라 짐작된다.

 

 

 왕비 알현실에서 바라본 궁녀들의 처소!

부엌이었을 곳이 저곳이구나 싶었다.

 

 

 옥호루 옆으로 민비의 침실이 나왔다.

보료 뒤로는 백동지도 병풍(왕실의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로 정원에서 즐겁게 노는 동자들을 그렸다는데

그림 속 아이들이 외국사람으로 보임)과 주칠경대,

붉은 칠을 한 책상, 놋쇠로 만든 촛대가 보인다.

왕비는 옷을 여러 가지 입던데 공간이 따로 있었을까?

 

 

 침실 바로 옆으로 수를 놓는 모습과... 

나전칠기 상자에 알록달록 실들이 정겨웠다.

역시 방은 좁고 소박하여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공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1895년 일본의 자객들이 침입하여 민비를 시해한

옥호루(玉壺樓)가 오른쪽 끝으로 보인다. 이들은 건청궁에 

난입하여 고종에게 미리 준비한 명성황후 폐출조서에

서명을 강요하며 위협했으나 고종이 이를 거부하자

칼을 휘두르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이어 궁내부대신과

궁녀와 환관 40여 명을 살해한 뒤...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무참하게 시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화장하는 야만적 행동을 저질렀다.

얼마나 처참한 날이었을까!

 

 

 고종의 집무실 장안당과 옥호루를 이어주는 문.

 

 

 옥호루 바로 옆으로 이런 숲이 있어 예전에 얼핏

왕비를 화장하여 이곳에 뿌렸다는 설명이 있었으나

혹시나 하고 갔더니 그런 설명은 없고 대신 왕세자와

세자비의 거처였던 자선당의 기단과 주춧돌이 보였다.

 

 자선당은 1914년에 철거하여 일본이 가져가

조선관이라는 사설미술관으로 사용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은 소실되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95년에

국내로 들어와 이 자리에 남게 되었단다.

 '나쁜 넘들, 별것을 다 가져갔구나!'

 

 건청궁을 특별 개방 전시(9월 18일까지)한다는 말에

궁금증이 일어 친구들과 날 잡아 경복궁에 왔는데

우리의 슬픈 역사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와 왕과

왕비가 살았던 생활공간을 가까이 보게 되어 

뜻깊은 나들이가 되었다.

 

 

 

  2023년 9월  7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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