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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에서떠남

오랜만에 덕수궁

평산 2024. 1. 23. 13:42

 시청역에서 내려 바로 덕수궁 앞으로 향하는 

출구로 나간다는 것이 그만 시청 앞으로 나와졌다.

 '에구, 길을 건너야 하네?'

다시 지하로 내려가야 하나 길을 살피다 덕수궁 앞으로 

건널목이 보여 잘됐다며 지나는데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보여서 아하~~~ 이런 근사한 모습을 보라고

이곳으로 나왔구나 싶었다.

 

 길 건널 생각일랑 잠시 잊고 바라보며 즐거웠다.

아직은 오전이라 추울 텐데 참 부지런도 하지!

다칠까 꼬마들 노는 곳이 따로 있었으며 마침 2층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이 야호~~~ ㅎㅎ

 

 

 덕수궁 앞에서는 11시에 수문장 교대식을 한단다.

생각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는데

15분에 해설을 시작한다고 해서 들어가야 하나~~~

망설였더니 다 보고 들어가잖다. 이런 시간 계산을

모조리 해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 같은 것이, 우리가

듣고자 했던 궁 해설시간과 딱 맞았기 때문이다.

 

 

 중화전(中和殿)이다.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어떠한 나라에도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겠다는 뜻이 서려 있는 건물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었던 곳이다. 임금이 아닌

황제국이라 하여 황금색으로 창살 칠한 점을 참고하자!

(다른 궁궐에는 황금색이 없음)

 

 

 중화전 안을 들여다보면 용이 네 마리 있다는데...

천정의 두 마리는 쉽게 발견했으나 나머지 두 마리는? 

임금이 앉는 일월오봉도 위 천장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해설을 들어야 이런 재미가 있다.^^

 

 왼쪽 건물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사용되었다가 

중화전이 지어진 후에 편전으로 사용된 즉조당이며

오른쪽 석어당은 덕수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중층 목조전각으로

 

 

 1904년에 불탄 건물을 1905년에 다시 지었단다.

임진왜란 때 의주목까지 피난 갔던 인조가 돌아왔어도

모든 궁궐이 불에 탔으므로 당시 월산대군의 집터를

개 보수해 임시로 사용한 정릉행궁으로 불렸던 이곳은

선조가 이사 가려는 창덕궁 완성을 목전에 두고 1608년

석어당에서 승하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석어당의 현판은 고종이 직접 썼단다.

박물관에 옮겨지지 않은 진품으로...

약간 행서에 가까운 아름다운 글씨였다.

 

 

 덕수궁의 서양식 정자인 정관헌은

처음 봤을 때 기존의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 듯

어색하였으며 다양한 문양을 넣어 화려한 모습이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건물인데 지어진 연대를 자세히

모른다거나 그럴 것이라 추정한다니 기록이 없어

그럴 테지만 안타까운 점이었다.

 

 

 고종의 침전이었으며 승하한(1919) 장소인 함명전이다.

다른 궁궐과는 달리 덕수궁에는 황후의 침전이 따로

없었는데 이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황후가

시해되었기 때문이며...

 

 

 그래서일까 쓸쓸함이 묻어났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들러 대한제국의

서양식 영빈관인 돈덕전으로 향했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에 맞추어 지어진 국제행사장으로 접견실이자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1920년대에 

훼철된 건물을 2023년에 재건 및 개관하였다.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준공한 석조전은 엄격한 

비례와 죄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의 양식으로

유럽의 궁전을 본떠 지었으며 1층은 중앙홀, 접견실 등을,

2층은 황실의 사적인 공간인 황제 침실, 거실 등이 있는데

고종이 세상을 뜨면서 일본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훼손되었다가 2014년에 대한제국역사관이 되었단다.

인터넷으로 일주일 전에 예약 해야 해서 다음 기회에... ^^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고종의 길을 걸어...

러시아공사관에 이르렀다. 고종이 다른 궁궐로

향하지 않고 덕수궁(경운궁)에 애착을 보인 이유는 

영국이나 러시아, 미국 등 각국의 공사관이 가까이

있어 일본의 무력도발이 어려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니 바람 앞의 등불인 시절로 지금 또한

중화(中和)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끝으로 들렀던 곳은 중명전으로 덕수궁이 제한제국의

황궁으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황실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할

서재로 지어졌으며 1905년 11월 일본의 강압 속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했다.

 

 덕수궁은 학교 다닐 때 한 달에 한번 청소를 한다고 

들렀던 곳이라 친근함이 있지만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친구들 모두 

뿌듯한 시간이었다며 즐거워하였다.

 

 

 

 2024년 1월  23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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