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지나다 경춘선 숲길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꼭 와봐야지! 하며 지나쳤다가 오늘에서야 가보자며 길을 나서게 되었다. 동네나 뒷산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져 시원하였다. 많이 올 것 같지 않아 양산을 들고나갔다. 화랑대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탔던가? 가물거리던 중 역에서 숲길로 이어진다는 이정표가 보여 반가웠다. 경춘선 숲길은 총 6km였으나 화랑대역이 그 중간지점으로 장미는 시들고 있었지만 능소화와 초록이 예쁜 길로 안내하였다. 아직 계단 오르기가 익숙지 않아 역에서 올라올 때 조금 신경 쓰였는데 그림 전시회에 자전거길이 따로 있어서 편안하고 낯설지 않았다. 물과 바나나 두 개 가져갔었다.^^ 여전히 비는 한두 방울 떨어져 시원했으며 나리꽃과 폭포를 만난 이곳은 동네의 광장 같..
신문을 읽다가 가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 평창동에서 열리는 벼루 전시회였다. 붓글씨를 경험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사진만 봐도 예술품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워 관심이 간 것이다. 문학인이신 이근배 선생님이 모은 작품들이었다. 요번 전시회의 제목이다. 상식으로 안다고 여겼을지 설명이 자세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해와 달이란?...ㅎㅎ 한 바퀴 돌면서 터득한 것이... 벼루에 있는 동그라미 두 개를 일컫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앞의 온전한 동그라미가 해(日) 아닐까! 조선 15~ 16세기에 만들어진 '위원화초석 일월연' 오른쪽 글씨는 '은대원'이었다. '위원화초석 송죽포도 운룡문 일월연' 처음에는 벼루의 이름도 어려웠는데 벼루를 만드는 돌의 종류에 따라 위원화초석, 남포석이 따라붙었다. 대부분 조선 15~ 16세기 거라..
조용하던 동네에 이상한 바람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불었다. 일단 집 앞에 전철역 생기는 것이 시초였을 것이다. 말만 무성하다 집주인 바뀌는 모습이 흔해지고 '아파트에 불이익을 주는 부동산은 거래하지 말자!'란 현수막이 달리더니 점점 극성으로 변했다. 누가 앞장서는 것인가! 부르는 이름이 있었지만 더 구체적인 이름을 넣어야 가격이 올라간다며 이름을 공모했다. 잘 안되자 이번에는 열 개 정도를 만들어 그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허~~~ 참나! 골라서 얼른 관리실에 갔다 주었다. 종이가 집에 있는 것조차 거북해지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몇 달이 흘렀는데 그것도 잘 안됐을까! 요번에는 이름을 3개로 간추려왔다. 모두 영어로 자세한 뜻풀이까지 있었다. 한글보다 세련미가 있다고 여겼나 보다. 자율적으로 ..
흙길이 그리워 떠난 그 길 끝에 사랑스러운 덩굴장미가 피어 있었다. '둘레길이나 밟고 지나가자!' '파란 잔디 위 장미도 보고 가자!' 두 마음이 망설이는 사이... 언제 장미 보러 가겠나 싶어 잔디밭을 건넜다. 그늘진 장미터널이 시원할 테지만 싱그런 잔디를 밟고 길게 뻗은 장미꽃을 천천히 음미하였다. 꽃송이가 작아 앙증맞으며 화려한 듯 예뻤다. 풋사과처럼 은은한 향기도 났다. 그냥 지났으면 후회할 만큼 취해가는데 '어?' 꺾어진 장미 송이가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가 한 송이 탐했나 보다. 가지는 꺾어졌으되 한쪽 줄기가 이어져 힘겨운 물구나무를 서고 며칠이 지났는지 마른 송이가 되어 고개가 뻣뻣하였다. 줄기를 잘라주고 싶었다. 아마 가시가 있어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꺾어진 지점에서 가시가 마구 찔렀다..
김치를 연달아 담갔다. 쉬면서 천천히 했지만 서있는 시간이 많으면 다리가 무거워 몸을 움직여주며 임했다. 장마가 오기 전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이다. 배추를 한꺼번에 버무리지 않고 통에 평평하게 깔면서 양념을 위에 살짝 문질러주었다. 깍두기도 마찬가지다. 풀 끓이고 양념을 만들어 고춧가루 불린 후 (배추김치보다 고춧가루는 반 정도 들어감) 모조리 섞은 다음에 통에다 무 절인 것 한 켜 넣고 양념을 위에 쓱쓱 얹어주는 방법으로 하면 양념이 튀지 않고 양을 조절할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에나 버무려 위에 채우는 것이다. 김장 때는 무를 커다랗게 썰어서 요번에는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담갔다. 남은 생새우가 있어서 새우젓과 함께 넣어주었다. 어떤 김치든 한 통이 되지 않으면 서운해서 무 6개를 담갔더니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