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양평에 가려다 기차를 잘못 타 강촌에 도착하여 구곡폭포 가는 길에 은행나무가 많았던 기억과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시원찮아서 미련이 남았기에 비 온 끝이라 다시 가보게 되었다. 처음에 갈 때는 역에서 내려 폭포 입구까지 무척 멀다고 생각되었으나 두 번째는 확실히 가깝게 느껴졌다. 역에서 100m를 벗어났을까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남자 두 분이서 말을 걸어왔다. 기차에서 내리는 것을 봤다며 들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나? 걸음이 빠른 분들이었는데 우리와 멀어지는 것 같으면 별 거 보이지 않아도 무엇을 유심히 관찰하는 듯 기다려줘서 폭포 입구까지 꽃이야기 들으며 비교적 쉽게 닿았다. 입장료를 내는데 그분들은 무료혜택을 받기 위한 확인절차를 밟아 얼굴에서도 나타났지만 연장자였다. 애기나팔꽃 이름을..
옛 경기고등학교가 있었던 정독도서관에 놀러 갔다가 학교담 너머로 백인제 가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가도 가옥을 둘러볼 수 있지만 예약을 하면 해설에 방방마다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려 헌법재판소를 지나 가회동 동사무소옆 골목으로 들어서니 의젓한 주택이 나타났다. 근처의 주택 16채를 흡수해 1913년에 지어졌다는 가옥은 소유권이 전전하다가 1944년 당시 외과의사였던 백인제(백병원 설립자)선생과 그 가족이 소유하게 되었으며 1977년에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 서울특별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2015년 11월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한다. 놀란 점은 백인제 선생이 6.25 때 납북 되어 그 후로는 전혀 소식을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계속 자면 깨우지 않고 조용히 있으려 했는데 언제 다시 오려나, 시간이 아깝다며 나가잖다. 숙소에서는 뿌옇게 안개만 보일 뿐 해돋이가 없을 줄 알았지만 세수하고 밖으로 나오니 요만큼 올라와 있었다. 창문이 약간 북쪽으로 틀어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낮에는 글씨마다 색이 달라 화려했는데 아침 햇살에 비친 모습이 운치 있었다. '어서 가보자! 여러 날 이곳에서 놀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얼마나 더우려고 안개가 자욱한 것인가! 시원한 아침 바람맞고서... 빵과 커피까지 나오는 양식을 선택하였다.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원샷 때리는 여자라 식사를 마치고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미리 나와 실망이었지만 소시지와 햄을 나눠먹으며 깨끗이 비운 후 가방을 챙겨 8시 30분 정도에 숙소를 나왔다. 쉬고 싶어 했으면서 서두르..
아침을 먹기 전 잠깐 바닷가에 나왔는데... 잠자리가 바뀌어 깊은 잠을 못 잤다니 식사 후 쉬는 시간을 갖을까 예상했지만 산책하러 나가잖다. 나야 이런 시간을 좋아하고 말고...ㅎㅎ 해당화가 끝무렵인지 열매가 주홍빛으로 여물었으나 간혹 곱게 피어 우리가 오길 기다린 듯하였다. 전날 바닷가 구경을 해서 별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이 쭉 이어져 평화로웠다. "복잡한 관광지보다 좋은데?"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는 낭군을 보며 나도 울컥했다. 열심히 살아온 세월에 가끔은 숨통을 내줬어야 했지만 누군들 이런 시간을 갖고 싶지 않았겠는가! 마음속 여유가 없었던 것이리라! 어르신들 파크볼 하는 들판을 지나... 노랑꽃이 만발한 곳을 만났다. '무슨 꽃일까?' 눈으로 담으라..
15년 만이라 했다. 딱하기도 하지!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일 때문이기도 했고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계시니 언제 소식이 올까 가방에 필요한 서류를 넣고 다니며 항상 긴장감 있는 생활을 했다. 사우나 하나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인데 코로나 때문에 동네 목욕탕이 모조리 없어져 온천 있는 곳으로 가보자며 길을 나선 것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해도 환영했을 것이다만... 같이 가자니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나 또한 15년 만에 함께 움직이는 것이라 소중한 마음이었다. 아침 6시에 집을 떠난다고 해서 5시에는 일어나야지 하다 5시 21분에 일어나져 서둘렀다. 기차는 7시 20분 출발이어서 더 늦게 가도 된다 생각했지만 15년 만에 그리하자니 입 다물고 그러자 했다. 살면서 ktx 타보는 게 아마 두 번째였지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