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어느 곳에 '열 너머 감감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열까지밖에 못 세었다. 그러다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짐승들이 새끼를 열 마리보다 많이 낳으면... 모두 몇 마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열 다음은 뭐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도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이 사과가 몽땅 얼마요?" "열보다 많으니 알 수가 있나...! 아무튼 한 개에 한 냥씩이니 사과 수만큼 돈을 주시오!" "사과 하나에 돈 한 냥, 또 하나에 돈 한 냥......" 사람들은 이렇게 답답하게 살아갔다. 하루는 임금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공주가 반지를 좋아해서 아주 많이 모아두었는데... "아버지, 제발 제 반지가 모두 몇 개인지 알려 주세요, 너무너무 궁금해서 못 견디겠어요, 네?" "오냐, 오..

무진으로 향하고 있다. 며칠 쉬다 오면 주주총회를 통해 전무로 발령되게끔 조치를 취하겠으니 잠시 다녀오라는 아내의 말에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무진의 특산물은 무엇일까 의문을 갖는 이들이 있어 주인공은 안개를 떠올린다. 마음이 심란할 때나 한적함이 그리울 때,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시점에 오게 되는 무진인데 그렇다고 용기나 새로운 계획이 나오는 무진도 아니었다. 고향에 오면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백처럼 안개가 주는 희미한 배경 때문일까! 골방에서의 공상이나 불면을 쫓아내려는 수음 독한 담배꽁초 등 분위기가 대체로 어두웠다. 제약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다 좀 더 큰 다른 회사와 합병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고 동거하고 있던 희(姬)만 곁에 있었으면 무진행은 없었을 텐데 희(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