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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늦게 만난 여고 친구.

평산 2015. 12. 29. 00:00

 

 첨부이미지        밖에 있는데 여고동창이라며 전화가 와서 낭랑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얼굴이 무척 궁금하여 앨범을 찾아보니 그 옛날 복도에서 만났었는지 낯이 익었다.

 

 

 여고카페에 행사가 없어 한산할 때면 산에  다녀온 이야기나 가벼운 사연을 이따금 던져놓았는데 얼굴도 모르면서 순전히 글을 읽고 친해지고 싶다며 연락을 준 것이었다.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세월은 강산을 몰라보게끔 흐르고 같은 반도 아니었기에 충분히 어색할 수 있었을 텐데 용기 내어 소식 주었으니 보잘 것 없는 내가 행복하고 영광스러웠다.

 

 

 우린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아서 만나면  근처를 마냥 걸으며 뒤늦은 우정을 키워갔는데 오히려 나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며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속이 동해처럼 깊어 늦게 만났지만 재미가 솔솔 피어났다.

 

 

 

 봄날에 산이라도 가게 되면 내 꼬임에 빠져 진달래를 흠씬 따 먹으며 짙은 색이 더 맛있다는 둥 나이를 잊고 웃다가 뒤로 넘어지고, 뒷산에 올라 윤동주의 詩碑를 발견하고는 건성건성이었던 나와는 달리 짧았던 그의 생애와 '序詩'를 한 줄 한 줄 진지하게 해석해주며 시대적 배경 또한 서사시처럼 차분하게 얹어 이해가 쏙 되도록 들려주어서 여고 시절 총각선생님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진한 감동으로 훈훈했었다. 

 

 물론 관심이 영 다른 분야도 없지 않아 사랑보다 잘생긴 남자를 떠올린다거나 명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한 귀로 흘려버리다가도 곱게 치장하고 다니는 모습에 얼마나 귀찮을까하다 배울 점이라며 반성이 되기도 했다.
                         

                     

 

 

 가을날이면 햇볕 쬐러 공원이나 인근 대학을 빙글빙글 돌며 사진 놀이도 하는데 영혼이 없는 사진은 찍기 싫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증명사진처럼 이 아닌 배경 앞에서의 연출이 자연스러워서...마음속으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특이한 여인이라며...이 또한 중요한 지적이라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가령 v 를 나타내는 사진은 절대 찍지 않으며 자신의 장점을 실컷 드러내는 표정과 모습을 담아내는 일이라 놀라웠다 할까!


 며칠 전에는 '위대한 갯츠비'를 읽어봤냐며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려주었다.난 그 소설을 빌리려고 도서관에 두 번 갔었으나 갈 때마다 없어서 돌아왔는데 읽었으면 더 재미난 대화가 오고갔겠지만 영화를 본 것과 같은 자세한 이야기 끝에...그렇다면 왜 갯츠비가 위대하다는 것인지 알겠냐고 느닷없는 물음을 던져서 서로 이렇다 할 말을 건네진 않았지만 훌륭한 질문인지라 웃음이 나오며 알겠다 대답하고는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들 대화 같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내가 문학소녀(?)인 줄 알고 몇 년 전 뒤늦게 다가온 여고동창이지만 이렇듯 나에게 많은 영감과 아련함을 일깨워주고 그저 수다가 풍부한 아줌마이지 않게 이끌어주는 예쁜 그녀에게 올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본다.

 

 

 

  2015년12월 29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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