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있는데 여고동창이라며 전화가 와서 낭랑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얼굴이 무척 궁금하여 앨범을 찾아보니 그 옛날 복도에서 만났었는지 낯이 익었다.
여고카페에 행사가 없어 한산할 때면 산에 다녀온 이야기나 가벼운 사연을 이따금 던져놓았는데 얼굴도 모르면서 순전히 글을 읽고 친해지고 싶다며 연락을 준 것이었다.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세월은 강산을 몰라보게끔 흐르고 같은 반도 아니었기에 충분히 어색할 수 있었을 텐데 용기 내어 소식 주었으니 보잘 것 없는 내가 행복하고 영광스러웠다.
우린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아서 만나면 근처를 마냥 걸으며 뒤늦은 우정을 키워갔는데 오히려 나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며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속이 동해처럼 깊어 늦게 만났지만 재미가 솔솔 피어났다.
봄날에 산이라도 가게 되면 내 꼬임에 빠져 진달래를 흠씬 따 먹으며 짙은 색이 더 맛있다는 둥 나이를 잊고 웃다가 뒤로 넘어지고, 뒷산에 올라 윤동주의 詩碑를 발견하고는 건성건성이었던 나와는 달리 짧았던 그의 생애와 '序詩'를 한 줄 한 줄 진지하게 해석해주며 시대적 배경 또한 서사시처럼 차분하게 얹어 이해가 쏙 되도록 들려주어서 여고 시절 총각선생님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진한 감동으로 훈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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