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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옆에 있는 은행나무다.

싱그런 나무를 올려다보며 바로 뒤가 매표소 인

줄도 모르다 현대식으로 지어져 실망스러웠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창덕궁 후원은 해설사가 인솔하며

따로 남아서 구경할 수도 없는 구조라 하루 입장객이

제한되어 있는 줄 아는데 언제 바뀌었나!

 

 

 

 원서동은 창덕궁 서쪽 담을 따라 북쪽으로 길게 뻗은

동네로 대로변에서 한고비만 넘으면 높지 않은 건물에 

이곳이 종로일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보기 좋았다.

 

 

 

 눈을 크게 떠야 이런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금위영 서영 터' 란 국왕의 호위와 수도방위를 위해

숙종 8년에 설치했으며 병조판서가 대장을 맡았단다.

 

 

 

 100년 됐다는 커다란 기와집이 나왔다.

점심때 오면 차 한잔 대접에 잠시 머무를 수 있다는

글이 보였는데 은덕문화원으로 원불교 도량이었다.

 

 

 

 별 기대하지 않고 걸었으나 예쁜 한옥이 많았다.

단청을 체험할 수 있다는 곳을 지나고... ^^

 

 

 

 홍염공방이라 하여 무형문화재인 장인이 직접

염색체험을 도와주는 곳도 있었다. 서울시가 흉물스럽게

비어있는 한옥을 사들여 민간인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개방형 공공 한옥 중 한 곳이었으며 홍염은 붉은색이

궁궐 의복에 많이 쓰이는 것과 연루되어 있었다.

홍화, 오미자 등 천연재료를 사용한단다.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을 연구하고 전수하는

기관도 이곳에 있었다.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한희순 주방상궁으로부터 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양념이나 재료가 신선했으리라!

분위기가 조금 다른 한옥의 모습이었는데 음식에

관한 곳이라 그런지 빛이 나고 정갈해 보였다.

 

 

 

 와~~~ 창덕궁 담을 그대로

쓰는 집이 몇 군데 있어 부럽기도 했다.

왠지 이런 곳에서 자라면  색다른 추억이 있을 것이다.^^

 

 

 

 원서동 빨래터를 보고 반갑기도 했지만 사실 놀랐다.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있을 줄 짐작 못했기 때문이다.

창덕궁에서 나온 맑은 물이 지금도 흐르고 있었으며 

자연석인 빨랫돌 두 개가 정겹게 놓여있었다.

궁녀들과 일반 백성이 함께 이용했다고 한다.

 

 

 

 철조망 사이로 궁 내부를 들여다봤더니...

온통 연둣빛이라 싱그러웠다. 철조망이 없던 시절에는

동네 아이들이 궁으로 들어가 놀았단다.

청계천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원서동 기슭의

제일 높은 곳에서 백홍범 가옥을 마주하었다.

한때 백홍범이란 상궁이 살던 곳이라는데 한옥의

정겨움보다 담이 높고 근엄해 보여 기웃거리지 못했다.

상궁은 지위가 있어 녹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내려와서 언뜻 올려다봤더니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기와집은 별채이며 안채는 양옥으로 되어 있다는 설명에 

얼핏 기와지붕 너머로 양옥 건물이 보였다.

 

 

 

 한옥의 대문 옆으로는 작고 네모난 공간이 있었다.

누가 왔는지 내다보는 곳일까, 우체통일까?

열어봐도 될까나. 손이 잘리면 어떡하지?...ㅎㅎ

조마조마했는데 계량기가 들어 있었다.^^

 

 

 

 창덕궁 왼쪽 담을 끼고 쭉 올라 구경했던 곳이 원서동이며 

옆동네로 계동 가회동 삼청동 안국동 등이 있었다.

궁을 기준으로 북쪽은 한옥과 낮은 가게들이 있었고,

종로로 통하는 남쪽은 현대식 건물들로 대조적이었다.

걷다가 우연히 되돌아보니 창덕궁이 멋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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