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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제작의 시작은 통일신라 9세기 무렵,

문화의 유행과 함께 중국 자기가 들어오면서

소비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여 10c 고려에 들어서는

청자와 백자 생산에 성공하였다.]

 

 [가장 이른 시기의 가마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경기도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등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벽돌로 가마를 만들었으며 11c 초에는

전남 강진 용운리와 삼흥리 등에서 청자제작에

적합한 진흙 가마로 발전하였다.]

 

 

 백자부터 구경하다가 어느 사이에 분위기가

컴컴해져서 청자실에 온 것을 알았다. 이러다 나오겠지 

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 불안하기도 했었다. 

 

  '사유의 방'을 만들어 반가사유상 두 점으로 인기를 얻어

요번에는 청자실을 만들게 되었다는데 이런 연유로나마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에 다녀감은 뿌듯한 일일 것이다.

국보 청자 몇 작품을 따로 전시해놓아서 스쳐 지나는

모양이 아닌 집중력으로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청자 어룡모양 주자' (고려 12c)

용머리로 된 주자의 주구(注口)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찰흙으로 무엇을 만들어보면 작은 조각일 경우

말리다가 모조리 떨어지던데 복잡한 주전자의 물 나오는

곳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몸체에 조각된 비늘과

손잡이 등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청자는 12c에 가장 세련된 색을 띠었다 한다.

고려인은 은은한 녹색을 스스로 비색(翡色)이라

부르며 (여기서 翡(비) 글자는 물총새 비)

중국 청자의 비색(秘色)과 구분하였다.

 

 

 '사자모양 향로' (고려 12c)

사자의 입에서 향이 뿜어져 나오는 구조이다.

 

 비색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원료와 높은 온도로

청자를 구울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한데 불 때는 시간,

온도를 올리는 속도, 고온을 유지하는 시간, 

불을 빼고 식히는 속도 조절 등이 중요하였다.

 

 

 '사람모양 주자' (고려 12~ 13c)

대구광역시 달성군 내동에서 출토됨.

의복의 생김새와 봉황이 장식된 관, 두 손 가지런히 

모아 받쳐 든 복숭아로 보아 도교의 道士나

전설 속 西王母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음각, 양각, 투각, 철화, 상감, 상형 등 청자의 

모든 장식기법을 구사하여 완성된 작품이라 한다.

연꽃이 몸체로 만들어져 불교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며 

맨 밑에 향로를 등에 지고 있는 토끼 세 마리가 

백미라 해서 얼른 찾아보았다.^^

 

 

 '귀룡(龜龍) 모양 주자' (고려 12c)

경기도 개성(?)에서 출토되었다 함.

등에 새겨진 육각형 무늬 안에 왕(王) 자가

하나하나 새겨져 있었다.

비취색 유약을 두껍게 입힌 작품!

 

 

 고려 비색청자(翡色靑磁) 유약에는 산화망간(MnO)이

중국 비색청자(秘色靑磁)에는 산화티타늄(TiO2)이

상대적으로 더 많으며 흙과 유약의 성분분석 등으로 

고려청자의 기술이 밝혀지고 있지만 고려청자의

비색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한다.

 

 자기를 구경하고 나오니 2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이만' 하고 다음에 또 오자며 밖으로 나오는데

신문에 나왔던 청자를 직접 봐서 무엇인가 

뿌듯하고 충만한 느낌이었다.

 

 

 

  2022년  12월  31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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