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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이 동네를 지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선농단이 보이질 않고 아주 커다란 부잣집들이 줄지어

있어서 집 구경이 좋았으며 부근에 설렁탕의 유래가 

만들어진 곳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우연히 지나다

 '선농단역사공원'에 들러보았다.

 

 

 

 우리 집 누군가가 나온 초등학교를 지나며 요즘치고는

학교가 크고 주말이라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복잡한 오거리를 지나니 이내 주택가로 조용해졌다.

 

 

 제단과 몇 개의 초석, 향나무만 남아있던 곳을 

2009~ 2015년에 정비사업으로 복원하였단다.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를 지냈던 곳으로 

신라에서 조선까지 이어졌으며 일제강점기 직전인

순종 3년(1909년)에 농사의 신인 신농씨와 토지의 신인

후직씨의 위패가 사직단으로 옮겨져 폐지된 상황이었다.

 

 선농제를 올린 뒤 왕은 몸소 농사의 모범을 보이고 

풍작을 기원하는 뜻에서 적전(籍田:왕의 밭)에

씨를 뿌리고 세자, 대신, 백성들로 이어지는

친경의례(親耕儀禮)가 있었다 한다.

 

 

 선농단 남서쪽에 범상치 않은 향나무가 있었다.

조선 성종 7년 (1476년)에 선농단을 축조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어린 묘목을 선물 받아 심었다고 전해져,

제사 지낼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쓰였고

197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단다.

 

 

  임금이 몸소 밭갈이를 하는 친경이 끝난 후에는

문무백관 및 백성들이 제물로 올렸던 것을 요리하여

골고루 나누기 위해 귀한 고기로 국물을 내고 밥을 말아

먹은 것이 오늘날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발음이 쉽도록 선농탕, 설롱탕, 설렁탕으로 변했단다.

 

 선농단 지하로 내려가니 선농의 시대적 기록과 

왕과 왕세자가 행차시 입었던 의복들, 농기구 전시가 있었다.

무엇보다 임금과 세자가 궁을 떠나 이곳까지 발걸음 한 

사실에 반가웠다. 지금은 버스를 타고 궁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지만 가마나 말을 타고 행차했을 것이라 커다란

나랏 행사의 하나로 추정할 수 있었다. 

 

 

 

  2023년  1월  15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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