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의 연약한 쑥은 아니지만 햇빛과 바람으로 통통하게 올라온 쑥이라 보약으로 더 좋을 것 같았다. 수확하며 비닐에 꾹꾹 눌러 담아 뜨거워서 떴을까? 보라나 검은빛으로 변한 쑥이 더러 있었다. 삶아 맛을 보니 질긴 편이라 좀 더 시간을 둘 것을... 하지만 오래 두면 또 색이 파랗지 않아 덜 질기게 하려고 도마에서 짧게 잘라 절구에 찧었다. 찧은 쑥을 향기가 좋을 때 얼른 해 먹어야 하는데 요즘 밥솥의 패킹이 느슨해졌는지 밥알이 우수수 떨어져 김치냉장고에 며칠 보관하다, 찹쌀이라 괜찮겠다며 쑥이 상할까 봐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자리를 폈다. 밥 하는 동안에 쑥을 조금씩 덜어 전자레인지에 소독 겸 연해지기를 바라며 데우고 다시 한번 절구에 찧었으니 쑥은 질길 수가 없었다. 찰밥은 1kg 정도로 두 번 했으며..

문화유적길에 걸맞게 한음 이덕형의 신도비를 지났습니다. 둘러보니 내용 설명은 실해진 것 같으나 잔디밭은 부실해진 모양이었어요. 이덕형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는 세상을 떠나신 지 40년 후(1653년)에 세웠다는데 글씨가 마모되어 돌만 서있는 듯했습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외교관으로서 일본 장수를 만나 잘잘못을 따지고 명나라에 군사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내는 등 관직을 두루 거치셨어요.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과 그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내쫓으려 할 때 이를 반대하다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 양서면에 머물렀다 합니다. 오성(이항복)과는 서인과 남인계통으로 달랐지만 당쟁을 초월하여 절친한 사이였던 점이 알려집니다. 신도비를 지나며 숲으로 이어졌어요. 쑥이 보..

3월에 가고 싶었는데 이제야 나서봅니다. 그 후로 날 잡아 길 떠났지만 경의중앙선을 탄다 해놓고 경춘선을 타는 바람에 새로운 곳 구경하고 왔고요. 예전에는 걷다 말았는데 요번에는 완주해보고 싶습니다. 기차역 한 정거장을 걸어가는 여정인데요, 1코스는 양수역에서 출발하여 신원역까지 갑니다. 8.4 km에 소요시간이 3시간이라 쓰여있었지만 한 눈 팔고 가느라 거의 배는 걸렸을 것입니다. 한강의 지류를 따라 움직여봅니다. 식수용이라며 더럽히면 안된다고 하네요.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물줄기였어요. 물소리길은 표시를 찾아 따라가면 되는데 도시에 살면서 낮은 집들, 들판의 논만 봐도 숨이 탁 트여 좋았습니다. 햇볕은 강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공기가 맑고 길가에 통통한 쑥이 가득해서 봄나물 못 해본 아쉬움에 바쁘..

장마가 오기 전에 솜 틀기를 하였다. 요가 납작해지고 몸무게는 늘어나는데... 솜이불이 점점 무겁게 느껴져 커다란 숙제였다. 어디서 하는지도 모르겠고, 요즘 솜 틀기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어느 날 누가 던져놓고 간 명함이 현관 앞에 떨어져서 무척 반가웠다. 내내 갖고 있다가 알맞은 시절이다 싶어 전화를 해보았다. 솜 트는 집이라며 아줌마가 받아 기뻤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방문시간 약속을 하고, 어떤 상태로 솜을 놔둬야 하냐고 여쭈니 그냥 쓰던 그대로 두란다. 실어 간다니까 부담이 적었는데 이불장을 보여주기는 부끄러워서 솜이 들어 있는 것은 모조리 마루에 꺼내놓았다. 솜이불이 두꺼워 버리려고 한 것도 못 버리고 이참에 상담했더니 이불 3채가 나온다네? 와아~~~ ^^ 이불보도 직접 만든다며 요나..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모습으로 흔하지 않은 색으로 구성되어 분위기가 편안하고 묘했다. 오르자마자 '복원전시실'이 있었다. 당시에 수집된 건축재와 시공기술에 대한 기록을 남겨 복원과 활용의 사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데 전시회도 즐거웠지만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이 더 의미 있었다. 목구조 벽체는 두 공간 사이의 칸막이벽으로 그 자체가 근사한 예술작품으로 보였다. 앙증맞았던 창틀의 모습. 옛 서울역사는 전통적인 붉은 벽돌구조에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철근 콘크리트구조와 철골구조 외에 석재를 구조체의 일부로 혼용한 건축물이다. 외부의 장대석을 받치고 있는 석재. 목재 부조 장식으로 천정 우물 반자나 커튼 박스, 벽체등에 사용된 장식무늬들을 따로 정리한 모습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복원전시실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