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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바쁘셔서 산책을 못 다니시다가
날이 추워졌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나가신단다.
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모조리 다녀오셨다는데
하루는 궁금해서 계속 앞으로 향했더니 집 방향이 혼동되어
3시간 넘게 걸으시고 앵꼬(?)가 나서 혼났다는 말씀에
"너무 많이 걸으셔도 안 돼요, 아버지!"
나도 산책을 좋아하고 풍기에서 오다가 사 온
막걸리 두 병이 있어서 아버지 갖다 드릴 겸 같이
산책 가보자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셨다.
막걸리 두 병이 언 3kg은 되어서 집에다 놓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들렀다 다시 나오면 어렵다고 가방을
가져올 테니 한 병씩 메고 다니자 하신다.
"도착하기 30분 전에 전화드릴 테니 천천히 나오세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미 정류장에 나와 계신다며
햇볕이 땃땃해서 좋다고 어서 오라고 하셔서 마음이
급해졌다. 바람이 불지 않아 다행이었는데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계셨던 아버지를 만나 양지쪽을 택하여
건네주신 인삼사탕 하나씩을 물고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다 호수마을에 도착하였다.
한 시간쯤 천천히 걸어 이곳 공원에 도착해서는
귤과 저번주에 당 떨어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놀래서
초콜릿 한 봉지 사다 드렸더니 넣어오셔서 냠냠!
"이제 호수가 나올 텐데, 그냥 개울처럼 그렇더라!""
"지도를 찾아보니 호수가 있던데요?"
마을을 돌아서 호수를 찾아 이곳까지 왔는데...
들고 온 막걸리 이야기가 나오면 추워서 싫다 하시더니
목이 마르다며 막걸리 한잔 먹고 갈까? 하신다.
따뜻한 의자에 앉아 막걸리 한잔 반을 드시고 안주로는
김 한 봉지를 가져왔는데 나도 반잔에 물 대신 좋았다.
"이 무거운 것을 여태 지고 다녔어?"
"무겁지 않았어요...ㅎㅎ"
"한 병 이리 줘, 내가 메고 갈게!"
하지만 무게가 덜어지기도 했고 무겁지 않았다.
호수라 하셨던 또랑은 물이 말라 시골 개천 같았으며
정말 이곳이 호수일까? 막걸리를 마시고 정리하는
사이에 앞으로 향하셔서 지나가는 아줌마께 호수가
어디냐고 물으니 이곳 또랑 바로 왼쪽으로 있다기에
그럼 그렇지!... ㅎㅎ
"아버지, 호숫가로 가봐요!"
"여기 말고 호수가 있단 말이야?"
개천에서 낮은 돌다리만 건너면 호수였지만
아버지를 붙잡고 둘이 건너도 될 것 같았지만
위험하다며 자신 없어하셔서 다시 경사가 있는 계단을
어렵게 올라 다리를 건너는데 그늘진 곳은
풀밭에 서리가 내려 희끗희끗하였다.
"야~~~ 좋구나!"
"바로 옆인데 몰랐었네?"
"이제 날마다 이곳으로 와야겠다."며 이미 2시간
가까이 걸어 피곤하실 텐데도 막걸리 기운에 어릴 적
읊으셨던 명심보감 한 구절이나 소학언해를
시조 읊으시는 것처럼 리듬을 실어 소리 내셨다.
"구름다리는 나중에 가볼까요?"
"아니, 궁금하니까 지금 가보자!"
구름다리를 건너야 호수 안쪽에 있는 정자에
갈 수 있었는데 제법 경사가 있는 다리도 건너시고...
호수를 빙 한 바퀴 돌자 하시더니
다음에는 저기 높은 굴뚝을 가보시겠다고... ㅎㅎ
정류장서 만나 내내 아버지 팔짱을 끼고 정답게 걸으며
좋아하시니 이게 바로 효도 아니겠냐는 생각에
나도 신이 났었다.
옷 입혀줬다며 팜파스를 쓰다듬어 주시고...
호수를 거의 돌았을 때는 장미정원이 시작되어서
"오월 유월이면 더욱 보기 좋겠구나!"
"앞으로 놀이터로 삼아야겠다."
장미는 품종별로 심기도 했고
노랑 빨강 등 색깔별로도 심어 겨울임에도
꽃봉오리가 올라와 예쁘고 반가웠다.
항상 텃밭으로 가던가 집으로 향해 정신없이
청소해 드리고 돌아서기 바빴는데 모처럼 아버지와
산책길에 나서 호수를 찾아 드렸더니, 요즘은 하루도 쉬지
않고 다녀오신다며 멀리 굴뚝 있는 곳은 무엇이 있더라!
새로운 운동기구를 해봤다, 친구도 사귈 것 같다며
즐거워하시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딸이어서,
도움이 되신 듯하여 나도 즐거웠다.
2024년 12월 16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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