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성난 빗물이 아버지 텃밭으로 흘러들어 가

분지형 작은 밭에 커다란 구멍이 듬성듬성 생겼다.

바로 옆 도랑으로 합류하기 위해 물길이 휘몰아치며

우리가 못 본 사이에 사납게 흘러갔음이 드러났다.

 

 준비된 우비가 두 개여서 행여 비가 오면 어쩌나!

(오는 동안 비가 쏟아졌다가 그치길 여러 번했음) 

허리가 아프셔서 옥상은 올라가지 않으시는데

비옷이 그곳에 있다 하시더니 우리가 도착했을 때 

황톳빛 비옷을 입으시고 물길을 내고 계셨다.

 

 일주일 전 제초제를 뿌린 건물 주변으로 시커멓게

풀들이 죽어 물길을 방해하고 있어서 메워진 하수도

길을 다시 정비하실 때 난 비옷을 입고 밭으로 내려갔다.

몇 개 익은 토마토를 까치가 쪼아서 보기 흉한 데다가 

나머지는 날파리들이 왕창 달려들어 먹고 있어서

얼른 떼어내 거름이 될까 흙에 파묻거나 멀찍이 던지고

넘어진 고춧대를 세우며 고추를 따고 고춧잎나물을

먹어보고 싶어 줄기를 스르륵 훑어냈는데 너무 더워서

비옷을 벗어 지지대에 걸고 땀을 닦았다.

 "아버지, 고춧잎 따도 될까요?"

 "지금도 꽃이 피고 계속 따먹을 수 있으니 그냥 둬!"

이미 땄어서 속으로 덜컥 걱정이 되었다.

 

 세찬 빗물은 자갈까지 끌고 당당하게 흘렀으므로 

갈고리로 자갈을 모아보는데 갈고리가 가벼웠음에도 

자갈이 잘 모아져 연장의 훌륭함을 느꼈다 할까?

군데군데 모아둔 자갈들은 오빠가 삽을 대면 갈고리로

긁어서 얹어 물이 휩쓸고 간 커다란 구멍들을 메웠다.

혼자서 하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마는 갈고리로는

자갈뿐 아니라 잡초가 뽑아지고 땅을 새롭게 갈아엎은

모양으로 옥토가 되어가는 듯 참 보기 좋았다.

 

 움푹 들어간 텃밭은 바람이 없고 대신 모기가

많으며 하천 옆이라 위험한 데다 빗물에 밭이

떠내려가기도 해서 없다 생각하시면 어떨까 싶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김에 일터를 살피시고 돌아오며 

그곳에서 나는 채소들을 수확하는 재미도 누렸으면 하셔서

땀을 겁나게 흘리며 완벽하진 않아도 파인 곳을 메우고

물길을 내주고는 다음 주에 쪽파를 심자며 철수하였다.

아니 도중에 배가 고파서 더 이상 할 수 없다 손 들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하필 보청기가 고장이나 잘 듣질

못하셔서 자꾸만 일이 더해지긴 했다.^^

 

 다행인 것은 흐리기만 하고 비가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장들을 정리하고 집에 가서 빨 장갑과 비옷을 챙겨

흙이 묵직하게 달라붙은 신발을 끌고 올라왔는데

삼계탕 끓여놨다며 먹지 말라는 빵과 물을 흠씬 마셨다.

땀으로 목욕했으니 자꾸자꾸 물이 마시고 싶었다.

 

 바지와 윗도리가 따로인 비옷을 벗으실 때 허리에

묶었던 끈이 보이자 고무줄이 없다며 멋쩍어하셨다.

 "제가 넣어올게요!"

 "그럴래?"

 

 비옷은 애벌빨래로 세제를 풀어 조물 거리니

흙물이 잔뜩 나왔고 여러 번 헹군 다음

다른 빨래와 세탁기에 돌리자 밝은 노랑이 되었다.

꽉 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허리에 고정되는

정도로만 고무줄을 넣어 헐겁게 완성하였다.

 

 처음 해본 괭이질에 자갈 모으는 갈고리질과 

돌을 날라서 행여 몸살이 날까 했지만 걷기라도 해온 

덕분일까 찌뿌둥하다 체조 한 번에 괜찮아졌다.

요즘 들어서나 몇 번 도와드렸지 밭에 가서 일한 적은

물론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들을 등한시했어서

혼자 얼마나 버거우셨을까 반성하는 날들이다.

 

 

 

 

  2024년 7월  29일  평산.

'에워싼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보다 배꼽이...  (25) 2024.07.03
아버지 텃밭에서...  (17) 2024.06.30
아버지와 갈비탕  (25) 2023.10.04
가족모임  (8) 2023.08.17
쪽파종자 피클만들기!  (9) 2023.07.18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