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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화려한 외출

평산 2025. 2. 11. 21:41

 나에게 가야금이 두 대 있다.

하나는 집에 또 하나는 배우는 곳에 두고 썼는데

젊은 스님이 같이 배우다가 어렵다며 기증해 준 것이다.

햇수로 7년 정도를 배우다 그만두고 나니 

가야금 두 대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녀에게 가야금 배울 곳이 있는지 알아보라며

기증받은 것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이야기를 건네자

알아본 결과 집 가까운 곳에 있다며 기뻐하였다.

그녀의 집은 부산이어서 먼 길 가져가야 한다.

 

 스님(그 사이 일반인으로 돌아왔음)은 당신 곁을

떠난 가야금이라 당근마트에 팔아서라도 쓰라고 했지만

그럴 마음은 없어서 종종 기증할 곳을 알아보고 있었다.

친구들이 배운다면 악기를 주겠다고도 했으나

여태껏 임자를 찾지 못하다가 시집보내게 된 것이다.

 

 가야금을 거저 얻게 됐다고 그녀가 밥 한 번을 산단다.

압구정에서 만나자며 스파게티 이야기를 하길래

무슨 국수를 먹으러 압구정까지 가냐고 처음에는

툴툴거리기도 했으나 사겠다는 정성에 입 다물고 따르는

것이 이럴 때는 예의 같아서 낯선 동네를 조금 헤매다 그녀를

만나고 압구정 골목골목을 지나 근사한 곳에 오게 되었다.

 "가끔은 이런 곳 괜찮지 않나요?"

 "그러네요...ㅎㅎ"

 

 그녀가 시킨 와플 거시기로 이름은 끝까지 모르겠다.

우린 반반씩 나눠 먹었는데 그냥 봐도 달달할 것 같지만

시럽을 끼얹고 쨈을 발라 먹어야 더 맛있었다.

 

 내가 시킨 핫케익 거시기... ㅎㅎ

하얀 것은 치즈 같았고 몽글몽글 블루베리잼?

와플과 핫케익이 두 개씩이라 싸우지 않고

되도록이면 촌티 나지 않으려 애쓰며 정답게 먹었다.^^

 

 그녀가 몇 달 만에 부산에서 올라와 할 이야기가 많던 중 

바로 위층에 클래식 CD 파는 곳이 있다며 가보자 했다. 

부산에서 온 사람이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없어 고요하고 정갈하며

은은한 음악소리에 온갖 CD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곳은 어떤 분이 매장을 냈을까요?"

궁금해서 여러 질문을 해봤는데 어디 방송에서 나왔냐고... ^^

이날만 사람 발길이 적었나 경제성은 따지지 않고 개인의

취미생활을 너머 함께 즐길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였다.

예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혹시 그분 아닐까?

직업은 전혀 다른 분야이나 클래식에 관한 지식은

웬만한 전공하신 분들보다 박식하시다 소문난...^^

직원도 말을 아끼며 조심스럽게 대답을 해주었다.

 

 음악에 대한 책도 많아서 연주회를 다녀와 느낀점

쓴 글을 소파에 앉아 맑은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깊은 산속에 온 것처럼 소음 하나 없이 차분해지며

천국은 또한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동이 왔다.

물론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말이다.

 

 오후 4시쯤 되어 밖으로 나오니 이번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려 그녀와의  만남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맛있는 것도 먹었고 음악과 정갈한 분위기에 푹 빠졌으며

짧은 시간에 하얀 세상을 만들어줘서 놀랍기도 했다.

무엇을 타고 갈까 우왕좌왕하다 눈 오니까 지하철!

 

 동네에 도착해서는 일부러 눈 구경하려고

길게 돌아 돌아서 집에 들어갔는데 국수 먹으러

압구정동까지 가야 하냐며 툴툴거렸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와의 재밌고 화려한 외출이 되었고

손 탔던 가야금을 이름 모르는 곳에 주는 것보다

기쁘게 전해줄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했다.

 

 

 

 

  2025년 2월  11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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