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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30분의 여유

평산 2009. 5. 24. 14:49

 

 꼭 더도 말고 30분의 여유가 있는 날이 있다.

이런 일에서 저런 일로 옮겨갈 때 나에게 주어진 사이의 시간 30분......

처음에는 집에 잠깐 들렀다가 점심을 후다닥 먹고 다시 출발했었다.

당연히 허겁지겁 일수밖에 없어서 바쁘게 걸어가자니 땀은 나고 도착해서도 마음의 안정이

없어 부산했었다. 한 낮에 멋진 길도 아니니 싫증도 났었고......

 

 어느 날 문득 타고 가던 버스에서 내렸다.

이쯤에서 아래로 무작정 내려가면 목적지가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해보며......

길을 물어물어 새로운 길로 향할 때 마음이 새로워지고 신선함이 밀려왔었다.

낙산 성곽이 시작되는 윗부분에서 깨끗하게 정비된 아파트 단지를 지나 인근 대학에 들어서면 

삭막할 것만 같은 건물사이로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쉼터가 산길로 이르며 시작된다.

처음에는 파악을 못했다가 시간이 지나니 점점 눈에 들어와 발견을 해서 무지 행복했었다.

가파른 경사에 네모로 칸을 만들어 흙을 채우고 그늘 식물인 옥잠화를 가득 심어서 풍성함을

한 아름 안겨주며 나에게 주어진 30분의 여유가 시작된다.

 

 

 

 

 요즘 한창 축제기간이라 높은 언덕 위 벤치에 학생들이 여기저기 보이지만

평소에는 친구해 줄 이가 바람과 햇빛과 초록이들 뿐이다. 산들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리는

노란 씀바귀 꽃들이 푸른 잔디 사이사이에서 날갯짓하며 하늘거리는데......

정원을 가꾸시는 분들은 일거리겠지만 푸른 잔디에 피어나는 키 작은 노란 꽃들의 조화는 아무나

만들지 못하는 영역이란 생각도 들만큼 무척 예쁘다.

그들이 한가함을 즐기는 모습에 내가 합세를 한다고 할지......

어떤 날은 싸갖고 간 바나나 두 쪽을 먹기도 하고... 책도 잠깐 읽고 ....꽃구경도 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려와도 가슴속에 뿌듯함이 배어난다.

점심을 굳이 챙겨먹지 않았다 하여도 이런 기쁨이 더 큰 것을 보면 새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본 착각으로 걷다가도 웃음이 나오고......

 

 

 

 

 

 학교를 나오며 연결 되어 있는 계단을 내려오면 또 이런 멋진 공원이 기다리고 있다.

낮 시간이라 동네의 어르신들 몇 분만이 체조를 하시거나 담소를 나누시는 모습이 보일 뿐......

 

 이곳은 총무당(總武堂)이라 쓰여 있는 곳으로 조선말에 최고 군사기관이었으며 대궐의 수비,

도성의 순찰 등을 총괄하던 삼군부청사 (청헌당, 총무당, 덕의당)의 중심건물이었단다.

말하자면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로 지금의 광화문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 정부중앙청사의 자리에

있었던 것을 일제가 1930년에 이곳에 마음대로 옮겨다 놓았다고 한다.

 

 

 

 

 

 관아건물이라 그런지 위엄이 느껴지고 사뭇 무게감이 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곤장을 맞을 것도 같아 쭉~~~걸어서 의자가 놓여 있는 곳에 얌전히

앉았다가 나온다. '아~~~30분의 여유가 좋구나~~' 하면서......

 

 이곳에서 목적지까지는 5분 정도가 걸리니 마음 급할 것 하나 없음이다.

하루 중 30분은 짧기도 하지만 나에게 사이 시간으로 30분이 주워지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곳을 찾아 주위를 들러볼 무엇도 없이 그냥 집들과 차들이 놓여있는 길을 다녔을 것이었다.

누구와 함께 하려는 30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겠으나 혼자서 누리는 30분은 그야말로 호강이다.

잠깐 휴식에 긴 여운이 스미는......

 

 

 

 

 2009년  5월  24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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