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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버렸으면 어쩔 뻔했나!

평산 2016. 2. 16. 21:59

 명절에 친정엄마가 이불 한 채를 가져가라하셔서 속으로 잠시 망설였었다.

이제 살림을 정리하시는 차원에서 버리기는 아까우시니 권하시는 거지만...

나도 정리해야하는 입장이고 새롭게 이불을 장만한다면 가벼운 이불을 사용하고 싶지,

예전의 무거운 이불들은 짐이 되기도 해서 말이다.

 

 마침 동생들도 옆에 있었는데 엄마 앞에서 오래도록 망설인다면,

도움 되라고 가져가라 하시는 마음에 민망해질 수가 있어서...

집으로 가져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일단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어 들고 왔었다.

커다란 이불보따리를 마루에 무작정 던져놓고는...

다시 국거리를 사들고 시댁에 가야했으니 이날은 동동거리며 움직였다.





 겨울이불이라 부피도 컸지만 무게도 많이 나가서 바라다보며 답답했기에 먼저 이불 호청을 벗기고,

솜을 햇볕에 널어놓고는 요를 살펴보니 솜싸개가 오래되어 보여 고민이 한층 더해갔다.

"어떡하지? 엄마가 주신 요인데...좀 상태가 그러네..."

그냥 놔두다 짐이 되겠다며 버리자고 하는데 마음은 이미 버리자는 쪽으로 옮겨갔으나

당장 버리자니 편칠 않아 골칫거리마냥 더 멀리 밀어놓았다.


 이불솜은 무거웠지만 다시 틀은 듯 깨끗해서 쓰지 않던 분홍 껍질에 말끔히 씌워 정리하고는,

마루 걸레질을 하는데 요 솜싸개 한쪽 귀퉁이 뜯어진 곳으로 솜이 삐죽 내민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버려질 것 같으니 나 좀 한 번 더 봐달라고 했을까?'

솜을 이리저리 제쳐보고 생각보다 깨끗해서 요번에는 솜싸개를 벗겨보기로 했다.

사실 누런 얼룩을 마주하며 누가 범인이었을까 동생들을 들었다 놨다 웃기도 했는데 말이다.

먼지가 날릴 것이라 조심스럽게 솜싸개를 뜯어 확인해보니 솜싸개와 솜이 별개였을까!

아니면 어젯밤에 신령님이 솜을 바꿔놓았을까! 

보이는바와 같이 아무런 자국 없이 솜 색깔이 뽀얀해서 놀랐다.


 '요 하나 만들려고 목화를 따려면 엄청날 텐데 버리려했다니 죄받을 뻔했구나!'

터진 곳이 없었다면 확인도 없이 사라졌을 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고마워서...

요 싸개를 세재와 락스를 풀어 담그고 솜을 베란다에 옮겨 널자니 솜가루가 하얗게 묻어난다.

'옷도 털어야지 마루도 다시 닦아야지 빨래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


 그래도 엄마가 주신 이불을 다시 정비해 쓰게 생겨서 아팠던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솜이 깨끗한 걸 보면 누가 지도 그린 것은 아니었나봐, 혹시 바짝 말라 자국이 없어졌을까?

얼른 꿰매보고 싶어 솜싸개를 제일 따뜻한 방에다 널어 말리고는...

뜯어진 곳을 먼저 꿰맨 후 너 때문에 솜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하얗게 빨아진 요 싸개에 솜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어 중간의 배를 꿰매고,

위아래에 호청을 씌우자 와아~~ 임금님의 반짝이는 보료처럼 되었다.


 여러 날 이불정리하며 힘들었지만 친환경상품으로 이불 한 채 마련했으니...

손님이 온다한들 걱정 없다며 쓰다듬어주고 이불장에 곱게 넣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 솜싸개만 보고 버려야하나 했는데, 솜이 뽀얗고 좋았어요."

 "그럼, 외할머니가 목화농사지어서 만들어주신 요가 그리 갔나보구나!"

 "네???"


그랬다,

버렸으면 어쩔 뻔했나!...ㅎㅎ...

시간이 지나 솜싸개가 누래졌을 뿐 외할머님 솜씨셨다니 이제 서야 목화농사 하신 것도 알았네!

 '그야말로 귀한 손님이 왔구나!'





  2016년  2월  16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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