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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 불러주는 동기가 고맙다.

어디로 오라며 함께 하자는데 그동안 참석을 못 하던 중...

물소리 길로 경의중앙선이 친숙해져서 가겠다 전했다.




 기차는 춘천으로, 용문으로 향하는 것 두 가지가 있어서 춘천 방향의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연이어 오는 4대의 기차가 용문으로 가는 것이라 늦겠구나 싶어 약속 장소보다는

이른 저녁 먹는다는 장소로 직접 가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렇게 만나 한강변에서 밥을 먹고 강물 옆으로 걷는 길이 보여 내려가보자고 했다.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환한 앞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뒤쪽에 구름이 몰리고 있었다.

밤 9시에 비 올 확률이 60%라는 말에 설마 했다.




 그런데 삽시간에 옆으로까지 검은 구름이 번져 주변을 시꺼멓게 만들었다.

 "밤 9시가 아니라 비가 곧 오겠는데?"

 "조금만 더 걷고 올라가자!"

그러기를 5분이나 지났을까,




 바람이 심해지며 주위의 나무들이 출렁거리고 때 이른 잎들을 떨구는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쏜살같이 날아다니며 온몸을 휘감고 머리는 제멋대로 엉클어졌다.

물결이 촘촘하고 검푸르게 파랑을 일며 바람 지나는 소리가 공포스러워 심란하였다.

조만간 물결이 덮칠 듯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안되겠다, 어서 올라가자!"

내려간 지 10분도 안되었는데 자연의 조화가 무시무시하였다.

비가 몇 방울 잎들에 섞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밥 먹었던 집을 나왔는데 할 수 없이 다시 올라가 20분쯤 머물렀을 것이다.

밖을 보니 햇살이 나오고 있어서 사실 놀랐다...ㅎㅎ

집에 있으면 이런 변화를 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가 섰던 자리가 어쩌면 비가 오고 안 오고의 경계에 있었던 듯하다.




 비는 오는 척만 하더니 잠깐 사이에 해가 나와 신비로운 빛을 발하였다.

내내 뜨거운 태양이 떠 있던 것과는 달리 나무나 주위의 색이 이른 봄처럼 희망에 부풀었고,

무슨 소릴 들었나 참지 못했던 물결은 부끄러운지 이내 편안한 숨으로 바뀌었다.




 말끔했던 벚나무 아래 테이블이 떨어진 잎들과 열매로 부산스럽게 변신하였고,

우리들 신발은 버찌를 피할 수 없어 즉석에서 만든 보랏빛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불러준 동기와 보여준 자연에게 감사할 일이었으며 낮이 길어 밝은 시간에 헤어지려니,

집에 가면 대문을 못 찾을까 걱정이었지만 금세 어두워져 들뜸이 가라앉았다.


 서울은 오후 들어 약 2시간 동안 세찬 비가 왔단다.

무슨 일이든 한쪽에 가두지 말고 경계에 서있음이 중요하다는데 자연의 경계를 경험한 날이다.

요번에 나오지 않았다면 생전 부르지 않으려 했다니 여러모로 나가길 잘했다.






   2019년 6월  18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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