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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곳을 본 순간 경이로웠다.

박노수 미술관에서 10분만 오르면 보이는 풍경이라 믿기 어려웠으며...

인왕제색도를 연상시키고 300여 년 전 정선(1676~ 1759)이 그린 그림과 똑같아서였다.




 그림에 나타난 기린교(麒麟橋)다.

근처에 있던 아파트를 철거(2011년) 하고 생태공원으로 만들려던 중 계곡에서 다리가 발견되어

정선의 그림에서처럼 복원했다는데 바위야 제자리에 있었겠지, 설마 바위도 복원했을까?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 위치에 보존된 돌다리여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기념물 제31호였다. 


 수성계곡은 장년기의 협곡처럼 깊었고 물은 적었지만 맑았다.

바위 틈으로 잡초와 이끼가 자라 꽃을 피우고 시대를 거슬러 정선 할아버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에 '수성동' 그림이다.

선비 세 분과 어린아이가 기린교를 건너는 모습으로 실록이 푸르러 여름이었을까?

나들이 나오셨나! 복장은 두루마기와 갓 등 모조리 갖춘 모습이다.

당시에 꽤 깊은 숲이었을지 모르는데 이제 어디로 가시려는지, 산봉우리도 그림과 똑 같다.




 경치가 아름다워 수성동 계곡은 선비들이 학문과 예술을 즐겼던 장소로,

이곳을 자주 찾았던 선비로는 안평대군과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를 비롯하여...

근대에 들어서는 시인 이상과 윤동주, 이상범, 노천명, 화가 이중섭, 소설가 현진건 등이었다.


 이제서야 돌아봤지만 근처에 살며 인왕산을 산책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자주 찾을만하였다.

광화문에서 자동차로 9분 정도면 닿을 거리라 이런 풍경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계곡 왼쪽으로 들국화가 보어 방향을 달리해봤는데 지금 봐도 근사하다.




 기린교 인근에는 세종대왕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 1453)의 집이 있었단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형 수양대군에게 맞서 어린 단종을 위해 목숨까지 걸며 신의를 지킨 왕자로

 당신의 호인 비해당(匪懈堂)'이란 별장을 짓고 시와 그림을 즐겼으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한 사람을 섬기라'는 의미의 비해당 대신 지금은 '사모정'이 놓여 있었다.




 선비들이 앉아 즐겼을 너럭바위도 제법 넓었다.




 계곡은 옥류동천(玉流洞川)의 시작으로 左右에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금은 거의 복개된 땅 밑으로 흐르다 청계천에 합류하게 되는 물길이었다.




 얼마 못 가 상류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는데 이곳 바위들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수량이 많으면 폭포로 떨어져 물소리가 더욱 좋았을 계곡길은 오른쪽 길과 합쳐지고,

인왕산 자락길로 이어져 윤동주 문학관 있는 곳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가 오후 5시쯤으로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발걸음을 멈췄는데,

인왕제색도를 연상케하는 바위를 바라보며 참 신기한 구경을 했다 싶었다.

바둑을 두다 도낏자루 썩은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처럼 비록 몇 시간에 과거 몇 백 년을 돌아본 듯

수성동 계곡과의 만남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깊은 인상을 주었다.





  2019년  10월  3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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