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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엄마의 손뜨개 옷

평산 2024. 1. 3. 11:30

 연말에 부모님 댁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 없다며 옷을 내놓으셨다.

손수 뜬 옷이라며 빨아 입으라는데

언뜻 내 기억에 엄마가 뜨개질하시던 모습은

50대 셨어서 강산이 몇 번은 변하지 않았을까?

 

 

 순간 마음이 묵직해졌다.

엄마의 손뜨개에 뭉클함이 일었던 것은 아니고

무엇이라도 주시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입지 않으면 버리는 세상이라 솔직히 

짐스럽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입술로는 '아니요'라는 말이 새었지만 

청각이 나쁘신 아버지께서 못 들으셨는지

멈칫하던 중 거듭하여 말씀하셔서 그러겠다고

마음 없이 대답해 드리고는 세월이 흠씬 묻어난

묵직한 옷을 마지못해 가방에 넣었다.

 

 '재활용을 해야 하나!'

당시에는 오자마자 처리할 것 같았어도

고민 아닌 고민이 되어 옷을 펼치고 살펴보았다.

어디 구멍 난 곳 하나 없이 성했으며...

좋아하는 색이기도 해서 보푸라기를 대충 제거한 후 

소매 끝이 거뭇하여 우선 세재에 담가놓았다. 

 '엄마가 짠 옷이니까 일단 빨아보자!' 

당장 내다 놓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커다란 망에 넣어 탈수한 다음 널기 전에

앞뒤로 살펴 다시 한번 보푸라기와 옷에 박힌 작은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말렸더니 좀 무겁긴 했어도 

소매를 한복처럼 곡선으로 처리해 넓어서 좋았고 

모양과 색이 단순하여 오히려 곱다는 생각에

재활용보다는 신년에 입고 엄마에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좀 더 놀다 가라는 엄마의 

말씀을 뒤로하고 나와 여운이 남았던 것이다.

 

 입어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환해져서

주름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듯했다... ㅎㅎ

길이 또한 알맞았으며 브로치라도 곁들였더니 한층

고급스러워져서 한겨울 코트 속에 입기는 벅차도

이른 봄 청바지와 연출하면 어울리겠다 싶었다.

엄마가 보시면 기뻐하시겠지?^^

 

 

 

 

  2023년 1월  3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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