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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즈음하여 어머니께서 참기름을 짜오셨다.
비싼 갈비, 황제 멸치에 금으로 만든 조기도 있다하지만
여전히 참기름은 매력적인 명절선물이다.
받는 사람들 입가에 고소한 웃음을 만들어주는...^^
참깨를 얼 만큼 볶아서 짜셨을지
병으로 9개를 만드셨다는데......
방앗간뿐 아니라 약국, 미용실까지 한번 단골이면
여간해서 바꾸기 어려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시는 동네가 아닌 장위동 고개를 넘어서 다녀오셨단다.
이제 등도 굽으시고 힘이 드셨을 텐데
어떻게 병 9개를 등에 짊어지시고는......
아니나 다를까 참기름 때문에 몸살기운이 있으셨단다.
기름 짜시는 날이면 젊은 시절 한동네서 아기 낳고
힘들 때 서로 도우셨던 친구 분들과 방앗간에서 만나
고소한 냄새에 파묻혀 네 집이 돌아가며
기름 짜질 동안에 이야기꽃을 피우신다는데......
요번에는 두 분이서만 기름을 짜시고 거동이
어려우셔서 택배를 시키신 분도 있으시단다.
집에 거의 다 오셔서 만두를 만드시려고 두부를 사셨고......
현관문을 딸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으셨지만
문을 여시자마자 갑자기 다급해지셔서......
싱크대에 배낭을 걸쳐놓으시고 화장실로 향하셨는데
가방이 바닥에 내려앉는 소리에 마음이 덜컥하셨단다.
병들이 부딪치며 쏟아지는 소리에 얼마나 놀래셨을지!
끈끈한 기름은 가방에서 줄줄 흘러나오고......
끝없는 고소한 냄새에 정신은 혼미해지시고......
어쩌면 하지 않아도 되셨을 일을 하셔야 했으니
힘은 몇 배로 드셨을 것이다.
말랑말랑한 두부의 완충(緩衝)역할 때문이었을까?
조심스럽게 살펴보시니 한병만 깨져서 다행이셨단다.
"얘, 늙으면 수도꼭지만 보여도 가고싶어진단다."
어머니께서는 스스럼없이 이런 농담도 하시며
비닐에 싸두셨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각각 말았던 신문지들은 기름에 절어서 장판처럼
두툼하게 변해있었고, 깨진 병은 일부러
기름종이로 모자이크 한 유리작품 같았다.
열심히 닦으셨을 테지만 바닥에는 여전히
기름이 번들거리고 있어서 며느리는 그저 휴지로
닦아내고...걸레질에...남아있는 참기름 냄새로
어머님의 어려움을 떠올려 볼 뿐이었다.
직접 짜오는 참기름이 고소하단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어머니께서 기름 짜러 다니시는 마지막 세대는 아니실지....?
일 년 내내 고소한 일들이 샘솟길 바라며
주신 참기름 보약처럼 먹어야겠다!
2012년 1월 26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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