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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을 사랑하는 파란 눈의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스물다섯 혈기왕성한 청년이던 그는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는데,

한국의 교육 수준을 높여보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강원도 강릉의 99칸짜리 선교장에서 5년 동안 살며 한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인 할머니가 빈방이 많으니 지내라고 해서 들어갔다는데 참 운도 좋으시지...ㅎㅎ...

덕분에 한옥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것은 물론 매력에 푹 빠져든 나머지 봉사단 활동이 끝났어도

한국에 눌러앉기로 마음먹고 1973년에 서울로 이사했다.


 당시 흔치 않던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들어갔는데 선교장에서 지낸 세월이 자꾸 떠올라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한옥에서 살겠다며 지금 사는 동소문동의 14칸 한옥을 얻었다.

당시 1천200만 원으로 주변 사람들이 비싸게 샀다고 바보라 놀렸다는데,

집값을 갚느라고 무척 힘이 들었다 한다.

그 후로 주변의 한옥도 사서 지금은  임대한 부분도 있었다.


 독신인 그는 형편이 어려워 서울에 유학 오기 어려운 지방 학생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1984년부터 대학생들을 매년 대여섯 명씩 자기 집에 '공짜 하숙생'으로 들였다.

물론 정원 가꾸기를 도와야 했으며 그가 출장 갈 때면 집을 지켜야 했다는데,

그동안 거쳐 간 학생이 60명 정도로 주말이면 아들, 딸 데리고 파란 눈 할아버지 집을 찾아온단다.

 "이제 만 채도 안 남은 한옥을 없애는 건 고려청자, 조선백자, 김홍도 그림을 다 없애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의 한옥 사랑이 엿보이는 말이다.




 '이해박는집!'

모르는 동네라 준비 없이 맞닥뜨리게 되었다가...

아름다운 한옥과 이름 하나에서 웃음이 뿜어져 나왔던 치과다.




 한글을 제대로 썼다는 자부심과 무엇인가 걸러내지 않은 토속적인 맛이 났고,

해학적이면서 아~~~ 하고 있는데 망치가 드나들 것 같은 연상이 되었다...ㅎㅎ...

진료과목이나 치과 선생님들의 내력이 적혀있어 정갈함과 정다움에 아프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갔다.




 집 안쪽에는 이런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오른쪽에서부터 읽어보면...'이 ㅎ.ㅣ 박 ㄴ.ㄴ 집'이라 쓰여있었다.


1926년 6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에 우연히 찍힌 사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 간판이 보였다는데 가문에서 내려오는 치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스러운 한옥에 현대시설의 치과여서 멋진 건물로 기억될 것이다.

 




  2018년  7월  23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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