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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에서 묘현례를 재현할 때 11월 첫 주에 행사가 있다는 것을 얼핏 들었다.

매년 5월 첫 일요일에 '종묘제례'를 한다고 알고 있으나 못 가봐서 관심을 갖고 있던 중

검색으로는 나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추향대제'가 영녕전에서는 오전 10시,

정전에서는 오후 1시 30분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주말이기도 했지만 다른 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 종친들은 입구에서 서류접수와 찬조금(?)을 받는 모습이었고,

매표소 앞에서 친구와 만나 천천히 정전(正殿)으로 향했는데...




 10분 전쯤이라 종묘의 정전 돌마당(월대)은 조용하였다.

관람석은 모두 채워져 있어 할 수 없이 정전 오른쪽에 서서 구경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바로 옆이라 비키라는 말이 없어 다행이었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과 왕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 노래. 무용의 총칭으로 '종묘악'이라고도 하였다.

똑같은 악기가 사당 앞에 두 곳, 월대에 한곳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모든 사당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이곳은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의 19분이 왕비와 모셔져 있으며 나머지 분들은 정전의 왼쪽 영녕전에 모셔져있다.

악기들을 보자 기대가 커지고 잘 왔다는 생각이었다.




 묘현례(세자빈이 혼례를 치른 후 조상들께 알리는 행사)에서는 문무백관들도 참석하는 모습이었으나

전주 이씨의 제사여서 그런가 똑같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입장하였다.

재현하는 행사가 아닌 실제 제례라며 분위기가 엄숙하였다.

 



 제례의 시작임을 알리는 기(旗)가 들어왔다.

조선의 왕들을 모신 사당이지만 오늘의 행사는 전주 이씨의 가족 행사로도 보여서,

이렇게 서울 한복판의 넓은 곳에 모셔져 나름 영광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왕족이 지금까지 이어졌으면 태어나며 귀족인 사람들일 것이다.

권력 욕심이 끊이질 않고 백성들은 인권 무시에 자유, 평등이란 단어가 무색했던 시기라

구경 온 사람들에게 예의를 표하라 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이 마음속에서 일기도 했다.




 서쪽에서는 붉은 복장의 악공과 무용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맨 오른쪽 사람들은 서 계신데 가운데 사람들이 먼저 사배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많아 그러는 것 같기도 했는데 절을 한 분들은 사당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묘현례를 볼 때는 해설사가 있어 행사를 쉽게 접할 수 있었으나...

시조를 읊듯 한자음을 소리 내는 것 같아 눈치로 짐작해 볼 뿐이었다.




 사당으로 향할 때 앞 줄에 있던 분들이 제1실인 태조를 모신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아,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각 실마다 직계 자손들이 차례로 서 계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줄 맨 끝에는 고종 순종의 마지막 왕조 후손들일 확률이 컸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무용이 시작되었다.

아~~~ 제례악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음악 듣기 하나로도 무용 보는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느껴지고 있었다.

은은하면서 옥구슬이 흐르 듯 청량감이 있으며 절대 가볍지 않고 장엄하였다.




이제 왼쪽에 계셨던 분들이 4배를 올리고 사당에 올라갔으며... 

각 실에서 술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야 하니 시간이 꽤 걸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걸린다 들었으나 두 시간이 가까워지자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중요 인물인 듯 왕세손이 등장하여 손을 씻고 사당에 오르니,




 느렸던 춤 동작이 빨라지고 악기가 많아져 더욱 웅장해졌다.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가 힘들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춤추는 사람들로 보였다.

처음에는 왼쪽에서 쳐든 손이 오른쪽으로 올 때까지 8박자 걸리도록 느린 동작을 보여주다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도구를 바꿔가며 절제미에 리듬을 실었다.

 



 왕세손은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듯했으며...




 요번에는 맨 오른쪽에 서있던 분들이 돌마당(월대)을 내려와 뒤쪽에 있는 사당으로 향했다.

종묘가 왕과 왕비만 모신 사당인 줄 알았는데 당시에 공신들도 모셔져 있다고 했다.




 따라가 보니 왕에 따른 당시의 공신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종묘를 여러 번 왔지만 해설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부분이라 의외였다. 

익히 들었던 황희, 한명회, 신숙주, 이황, 이이, 송시열, 김만중... 등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충무공 이순신은 이름이 없어 무척 놀랐다. 이곳도 그들만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마음을 넓게 써야지, 나라를 구하신 분에게?'




행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고 자리를 반대쪽으로 이동해보았다.



 외국인들이 많았으며 악공과 무용하신 분들이 퇴장하자...




 가까이 다가가 악기 구경을 잠시 했었다.

네모난 받침대 위에 비스듬히 놓고 치는 큰 북인 '절고(節鼓)'가 보이고...

16개의 종을 두 단으로 된 나무틀에 매달아 쇠뿔로 만든 망치로 치는 '편종編鐘)'

음악을 끝낼 때 쓰는 호랑이를 본뜬 모양의 등줄기에 톱날이 달린 '어'



 

  음악이 시작할 때 쓰는, 네모난 나무통 위에 구멍을 뚫어 나무방망이로 내리치는 '축'

 'ㄱ' 모양의 돌 16개를 두 단으로 된 나무틀에 매달아놓고 치는 '편경(編磬)'




 편경을 위에서 보면 모양이 같아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두께의 차이로 다른 소리가 났다.



 사당도 요만큼 근접해보고...




 서양악기 실로폰처럼 생긴 '방향'도 구경하였다.

이 또한 16개의 쇳조각이 길이와 너비는 같아도 두께가 달라 서로 다른 소리가 난 것이었다.

두꺼우면 낮은 소리, 얇으면 높은 소리!^^




 단풍 구경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좀 이른 편이었으며,

제례를 지내는 시간이 길었어도 의식을 지켜보고 악기 소리와 무용 구경에 지루함이 없어서

5월에도 참가해보고 싶었다. 입장료로 500년의 역사를 구경한 듯 근사한 제례악이었다.






 2019년  11월  7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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