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외할머니 댁에 다녀온 듯 기분이 그랬다.

도시에서 살다 여행 삼아 내려가면

호호 하하 농촌 아낙처럼 바쁘다.

일 년에 두 번 수확이 있을 때 가는데

봄에는 고사리 가을에는 밤이다.

밤나무가 10만 평이 있다는 곳으로 

가도 가도 밤나무였다.

 

 

 높다란 백일홍 등 꽃들 구경하고...

 

 

  주인 할머니께서 수확을 마쳤으니

주워가라고 한 장소여서 눈치 볼 것도 없이

돌아다녔다. 둔덕을 만들고 밤나무를 심어

편안하게 떨어지도록 山 전체가 다시 만들어진

곳이다. 배낭에 옷과 물을 넣고 비닐을 여러 개

챙겨 모자를 쓰고 이중 장갑에 준비가 나름 철저했다.

 

 

 허락이 떨어진 후 1주일 넘어서 갔더니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 밤이 좀 말랐으나

땅바닥에 떨어져 풀숲에 가려져 있거나 흙에

들어가 살짝 숨은 것은 생생한 보물 찾기와

같았다. 어쩌다 송이째 반질거리는 밤을 만나면

금덩어리를 만난 듯했다...ㅎㅎ 

 

 

 비닐봉지가 무거워지면 이렇게 모았다가

한꺼번에 넣기도 했는데 오동통 밤을 만나면 날

기다려준 것 같았고 다른 동물들도 겨울 동안 

먹겠지만 그냥 썩는 밤도 많아 서로 행운이 아닐까

싶었다. 밤의 소원이 사람에게 좋은 영양분을

주고 싶었으면 더욱!

 

 

 묵직해질 무렵 이제 그만 돌아가자는

전화가 왔다. 알았다며 소식을 전한 뒤 배낭을

메고 하나는 들고 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무엇인가 이상했다. 올라올 때 못 보던 장면이

나타나고 이쯤이면 주인 할머니 댁이 나와야 하는데

숲이 계속되어서 어라??? 친구들에게 낯선 곳이

나온다며 연락을 하고 설명을 해도 서로 모르는

곳이라 계곡을 따라갔었다.

혹시 봄에 고사리 꺾던 곳이 나오려나?

 

 

 하지만 고사리 꺾으며 이런 늪지대를 만나지

않았는데 어쩐 일일까! 물 있는 곳을 만나니

분위기가 좀 으스스 해졌다. 멧돼지가 파 놓은

곳도 군데군데 보였다.

 

 

 들국화가 핀 언덕이 나오자 그 와중에 예뻐서

혹시 무덤에 피었을까 올라가 봤는데...

무덤은 아니었고 가까운 나무 사이로 노랗게

추수하지 않은 논과 집들이 보여 반가웠다.

친구네 동네는 아닌 듯했으나 마을이 보이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금방일 듯해도 길이

없어서 이쪽으로 갔다 다시 나와 저쪽으로

갔다가 은행나무가 보여 다 왔으려니 하면

길이 없어 다시 돌아오다 질척거리는 곳을 지나고

숲을 가로질러 겨우겨우 마을로 내려오니,

 

 

 동네 아주머니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간첩을 만난 듯...

 "아니, 어째 거기서 사람이 나온댜?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닌디요?"

 "네, 밤 주우러 왔다가 길을 잃어 이곳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길은 과거 10년 동안 들어가지 않은 길인디...

조금 저쪽으로 돌면 좋은 길이 있는디...."

 "전혀 몰랐으니까요, 아주머니 사시는 주소 좀 알려주세요."

 "주소는 왜요?"

 

 주소를 알아야 친구들이 데리러 온다고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 하시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을까

염려하는 눈치시며 밭에 물 주는 일에나

열중하셨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1m만 떨어져도 듣지 못하셨다. 다른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아 젊은 사람이 근처에 있냐고

여쭈다 결국 옛날 주소를 알려주셨으나

내비게이션에는 뜨지 않는다 하여 근처 암자를

찾아가 스님께 여쭈었다. 높은 산이었다면,

깊은 산중이었다면 무척 헤맸을 것이다.

이렇게 길을 잃을 수가 있구나!

 

 

 숲길을 빠져나와 바지를 내려다보니

험했던 길이 다시 보이며 기가 막혔다...ㅎㅎ

친구들이 오는 동안 사정없이 털어도 끈적이는

액체가 씨앗과 함께 달라붙어 쉽지 않았다.

털다 털다 자동차가 암자에 오려면 경사가 있어

운전하기 힘들다는 말씀에 다시 내려가 찾기

쉬운 삼거리에 도착하니 마을 분들이 바로

이웃 마을로 내려온 것이라며 위치를

설명해 주셨다.산을 내려올 때는 방향이 조금

달라도 다른 동네가 나오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도 주운 밤 보따리는

꼭 움켜쥐고 있었는데... 비닐이 나뭇가지에 찔려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곧 쏟아지려는 찰나에

만났을 것이다. 일부러 다른 길로 간 것은 아니지만

엄청 잔소리 들었고 그 죄로 매끼마다 설거지

당번이었다.^^

 

 밤은 몇 번 씻어서 물에 10분쯤 담가 벌레를 

떨구고 소쿠리에 건진 다음, 마른 수건으로 하나씩

닦으며 벌레 먹은 것과 아닌 것을 대충 구별하여

김치통에 담았는데, 늦은 수확에 맛이 변할까 좋은

것부터 먹어야지 했지만 그렇게 되질 않았다.

구멍이 있는 것부터 삶아 발라내고 먹었더니 

말라서 오히려 달고 군밤처럼 쫀득했다. 

 

 친구와 통화한 내력을 오늘에서야 열어 보았다.

오후 4시 18분에 처음 내려오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마지막 통화가 5시 22분으로

혼자서 이웃 마을까지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4분이었다. 어둡기 전에 내려올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며 다음에는 꼭 붙어 다녀야겠다. 

 "친구야, 네가 그곳에 살아 시골살이도

해보고 좋구나! 고마워!!!"

 

 

 

 

 

 2019년 11월 1일 평산.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