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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에서떠남

'딜쿠샤' 방문기 2

평산 2023. 10. 12. 00:02

 1층 서쪽은 두 개의 커다란 방과 화장실, 옷방이 

있었다는데 초기에는 아들의 놀이방으로 쓰다가 

이후에는 손남방으로 썼다 하며 지금은 아내 메리의 

미술작품이 여럿 보였다. 집에서 일해주던 하인과

도와주는 여인들을 그렸는데 솜씨가 좋았다.

 

 

 몇 가지 색을 쓰지 않고도 우리네의 정서와 맞는

색감과 부드러움과 여백의 美를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음)

 

 

 알버트와 메리는 1942년 조선총독부가 외국인

추방령을 내리자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배를 타 약 두 달 만에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닿았단다.

이렇게 대륙을 돌아갔다니 여행으로 삼았을지 모르지만

추방당해서 재산을 정리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지도를 보는 내가 피곤함이 느껴졌다.

 

 

 2층은 오롯이 가족들만 사용하는 곳이어서

아끼는 물건들과 여가시간을 즐길 만한 것들로 

채워졌다는데 날씨가 더운 여름날에는 거실밖 등나무

덩굴이 테라스에 가득하여 그늘을 드리웠단다.

 

 

 딜쿠샤가 다시 새롭게 태어난 배경에는 2005년

이들 부부의 아들 브루스가 딜쿠샤를 찾아달라고 

의뢰하여 일제강점기의 지명만으로 2달 만에

찾았다는데 한국을 떠난 지 66년이 지나

아들부부와 손녀가 방문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확인하였고 그동안 집 없는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5년에 아들도 세상을

떠나자 같이 왔었던 손녀가 테일러 가문의 자료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고 딜쿠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벽난로 위에는 앨버트가 수집한 고려청자와

다양한 형태의 말 모형이 있었고 들어오자마자

마주한 열폭의 아름다운 병풍과 일본 인형 등

아기자기하였다. 2층 동쪽에는 테일러의 서재와 침실,

서쪽에는 메리의 작업실과 침실이 있었다.

 

 

 커다란 소파를 놓는 대신에 벽에 기댈 수 있는 

좁은 소파를 벽난로 양쪽에 두었음을 우리는 주목하였다.

밑에는 서랍으로 갖가지 물품을 넣을 수 있겠어서 

자리 차지 하는 것 없이 실용적이라 생각되었다.

 

 

 2층 동쪽방에는 딜쿠샤가 복원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2018년 7월에 거주하던

주민들과 원만히 합의하여 이주하였고 복원기간만도 

2년 정도 걸렸으며 현재 등록문화재라 하였다.

 

 

 복원 전과 후의 모습으로 이 집에 15 가구의

26명이 무단점유 형태로 살고 있었다니

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겠다.

 

 

 딜쿠샤 건축의 특징으로는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벽체를 세우고 내부에는 목조 마루를

깔았으며 특히  '공동벽 쌓기'를 하여 단열, 보온, 방습,

방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테일러는 추방당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으나 1948년 6월(한국을 떠난 지 6년 만에 )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고 항상 한국을

그리워하던 앨버트을 위해 아내 메리는 남편의 유해와

함께 그해 9월 인천으로 입국하여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치하고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딜쿠샤를 방문했다고 한다.

 

 

 

 

 2023년 10월  12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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