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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에서떠남

'딜쿠샤' 방문기 1

평산 2023. 10. 10. 00:00

 '딜쿠샤'란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란 뜻으로

1875년 미국의 네바다 주에서 출생한 앨버트 W. 테일러와

영국 출신의 메리 린리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이다.

이 집에 대한 소개가 신문에 여러 번 나와서 언젠가는

가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사직공원

방향으로 200m(?)쯤 오르다 보면 바로여서 찾기 쉬웠다.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1897년에

앨버트는 조선에 입국하였고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는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연극배우로 동양의 여러 나라를

순회하던 중 일본 요코하마에서 앨버트를 만났다고 한다.

1917년에 결혼한 후 광산사업과 '테일러 상회'를 경영하였고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는 미국 AP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고종의 국장, 3.1 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독립운동가들의

재판 등을 취재하여 세상에 알렸다.

 

 

  부부는 한양 도성 성곽을 따라 산책하다가

은행나무가 있는 넓은 땅(행촌동)을 발견하게 되었고 

아내가 이곳에다 집을 짓고 싶어 했으므로 은행나무가

있는 땅을 내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매입하여

1년 만인 1924년에 딜쿠샤가 완성되었다. 당시 땅

매입가격은 10만 원으로 1만 평이 넘었다 한다.

 

 

 은행나무에 가까이 가보니 보호수로 지정될 만큼

고목이었으며 수나무일까 은행(?)은 없었던 것 같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이곳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거둔

도원수 권율(1537~1599)의 집터이기도 해서 놀라웠다.

 

 

 딜쿠샤 정초석으로 1923년이라 쓰여 있다.

은행나무와 샘골이 있던 땅을 당시 사람들이 신성시

여겼기에 낯선 외국인이 집을 짓는다 하여 마을

사람들의 항의와 무당의 저주가 있었단다.

 

 

 은행나무 쪽에서 본 옆(동쪽) 모습,

 

 

 남향집으로 정면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졌으며 1923년에

착공하여 1924년에 완공된 딜쿠샤는 1926년에

벼락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지하와 1층 일부만 남고

모조리 타버려 1930년에 재건했다고 한다.

현관으로 들어가 본다.

 

 

 1층 거실이 있는 앞쪽이다.

여러 개의 문이 양쪽으로 열며 드나들 수 있어서

개방감에다 집터가 인왕산 자락의 높은 언덕이라

서울 풍경이 근사하게 내려다 보였단다.

 

 

 예전의 사진을 참조하여 공간을 재현하였다는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당시의 모습으로 보였다.

 

 

 1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지인들을 초대하여

파티와 연회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하였으며 한국의

습한 장마철에 대비하여 벽지보다는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 꾸몄고 벽난로와 커다란

괘종시계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화려한 듯 평온한 분위기였다.

 

 미국이 평안도 운산금광 채굴권을 획득한 후

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광산 기술자 중 한 분이 앨버트의

아버지 셔서, 7년 동안 감독관으로 있었고 지금의

천안에서도 관리자로 금광을 경영하였을 만큼 

원래 금수저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거실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여러 개의 문과...

길이가 14m인 거실이었다니 얼마나 넓었을까!

 

 

 겨울에는 추워 난로도 준비하였고...

 

 

 1층 동쪽에 있는 방은 원래 주방이었으며

부엌 바닥에는 돌을 깔고 석탄화덕으로 요리를 했단다.

창밖으로 은행나무가 잘 보였고 난방은 온돌이

아닌 방방마다 벽난로의 흔적이 있었다. 

 

 

 각각의 방들은 테일러 부부의 역사실처럼 꾸몄는데,

요코하마의 파티에서 둘이 만나 메리에게 아름다운

호박목걸이를 선물하여 마음을 전한 앨버트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인도로 떠나는 메리에게 꼭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열 달 후 인도에서 재회한 후

1917년에 결혼하여 한국에서의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메리는 배우이기도 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호박목걸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한국에 거주하던

적국 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하여 테일러도 그 해 12월에

끌려가 구금되었고 1942년 5월에 풀려났지만

일제의 외국인 추방명령에 따라 한국에서 쫓겨날

때까지(1924~ 1942) 딜쿠샤에서 살았다.

그 후 항상 한국을 그리워했다는 부부의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지겠다.^^

 

 

 

 

  2023년 10월 10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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