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번개로 산에 다녀왔다. 이런 날은 풍경이 다른 곳으로 탈출하는 것이라 답답함이 줄어들어서 좋다. 동네보다 추울까 조끼 하나 더 입었건만 불광동에 도착했더니 쌀쌀해서 만나기 전 모자를 쓰고 왔다 갔다 움직여주었다. 준비운동 하자는 말에 둘레길이나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발걸음이 족두리봉으로 향하고 있어 1년 전 멋모르고 왔다 벌벌 떨었던 곳이라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무엇보다 발을 정확하게 디디려 했고 서두름 없이 천천히 올랐더니 할머니가 올라가는 것 같다고 놀림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ㅎㅎ 정상에 올라 굽이굽이 산 너울과 멀리 백운대까지 구경하고 내려왔어도 오후 2시를 바로 넘긴 대낮이어서 헤어지기 멋쩍었지만 뒤풀이하기가 겁나 곧장 집으로 향했다. 다리가 잘 견뎌줘서 고마웠으며,..
혜화문을 지나자 식당에 가지 않고 점심을 먹으려면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옛 서울시장 공관'을 찾아가게 되었다. 종로구에 위치해 골목이 복잡하게 보일 수 있으나 계단을 올라서면 거침없는 주택이 나타난다. 집 정면의 모습으로 오른쪽 끝을 보면 알 수 있듯 서울성곽이 한쪽 면의 담장으로 이루어져 보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집이다. 1940년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목조주택으로 서울성곽을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하자는 목적 아래 이 집을 헐고 온전한 담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공관은 가회동(?)으로 이사 가고 지금은 '한양도성 전시 안내센터'로 바뀌었으며 왼쪽으로는 카페가 있었다. 카페 쪽에서 본 옛 서울시장 공관의 모습이다. 당시에 헐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며 마침 옆집이 이사를 가 서울시에서 ..
짧은 구간이지만 접근하기 쉽고 아름다운 성곽길을 방학을 맞이한 친구와 함께 걷기로 했다. 먼저 도착하여 주변 옷 구경을 하고 흥인지문(동대문)과 아는 체를 하였다. 원래는 '흥인문'이었으나 고종 때 풍수지리상 동쪽이 비어있다고 지(之)를 넣어 무게감을 주었단다. 동대문 바로 앞에 이런 각자 성석이 여러 개 있었다. 새롭게 정비된 돌과 비교해 보면 세월에 멋스럽다. 14c 경에는 축성 구간을 표시했으나 15c 들어서는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18c 이후에는 축성 책임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겼단다. 한양도성에 있는 각자 성석의 개수는 280개 이상이 전해지고 있었다. 앞의 각자 성석을 돌면 흥인지문공원과 하얀 건물의 한양도성 박물관이 보인다. 원래 이화여자대학병원이 있던 곳이었으나 강서구 마곡동으로 이..
뒷산에 올랐다 마트에 들렀더니 보름날이라고 나물거리를 할인하고 있었다. 찰밥과 나물을 잘 먹으면 만들었을 텐데... 나만 잘 먹고 대부분의 나물 색이 갈색이라 힘을 얻을 겸 푸른 잎의 양배추와 오이맛 고추, 두부를 담았다. 명절에 들어온 가공식품도 남아있어서 요즘 마트에 가는 이유는 시금치라 할 정도다. 그렇게 장을 보고 집에 왔더니 보따리가 보였다. 뒷산에 가는 동안 동물치료를 위해 외출했던 낭군인데 그 집에서 담아주셨단다. 햐~~~ 그릇까지 마련하여 말끔하게 담은 찰밥과 나물들을 대하고 커다란 福을 받았다 싶었다. 먹고서 福을 좀 나누라는 뜻인가! 반찬 하려다 시장 봐온 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말린 나물이지만 딱딱한 부분이 없어 오물오물... 많이 해서 몇 분과 나누는 듯했다는데 나물들에게서 향과..
명절에 동생과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첫 차를 사게 된 사연이었다...ㅎㅎ 그때는 내가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살 때라 사연을 통 몰랐었는데 천장에 뚜껑이 달려있었단 말에 아하 그 자동차? 군대를 제대한 남동생이 어느 날 엄마에게 자동차 좀 사 달라 했단다. 2주일이 지나자 엄마가 부르시며 만 원권으로 6묶음인 600만 원을 차 사라고 주셨단다. 몰래 모아둔 쌈짓돈이셨을 텐데... 엄마가 그런 면이 있으셨구나 싶었다. 동생의 일터가 잠실이어서 밖에 나가면 바로 자동차 매장이라 친구와 300만 원씩 옷 속에 넣고는 젊은 기운에 건들건들 슬리퍼 신고, 반바지에 티 하나씩 걸치고 매장에 들어섰는데 마침 직원 한 명만이 손님과 계약서를 쓰는지 책상에서 서류를 작성하며 한 눈을 판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