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을 오르다 몇 번을 돌아보았다. 둘레길을 떠나 위로 올라가는 중인데 무리 없이 운동하기에 알맞은 길이와 시간이었다. 총 3시간 반 정도 걸었을 것이다. 햇볕이 내리쬐도 기온이 낮아 눈이 녹지 않았다. 이후로 따스하게 느껴지니 지금쯤은 잔설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트 있는 곳이 '무학재고개'이다. 조선시대에 주로 고양군에 사는 나무꾼들이 넘어 다녔다 하며 험난하고 호랑이가 나오는 곳이어서 지금의 서대문 독립공원 자리에 유인막(留人幕)을 두고 군사들을 주둔시켜 행인이 10명 정도 모이면 화승총이나 활을 지니고 호송하였다니 100여년 전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봉수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올라 멋진 비상을 하며 위로 오를수록 인왕산과 비슷한 바위가 많았는데 인왕제색..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바꿔 타려는데... '기생들이 일어섰다'라는 문구에 눈이 커졌다. 안국역이 이런 모습이었나? 둘러보니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성함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누구의 발상인지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때때로 상기해야겠지, 나 아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독립문역에서 나와 안산을 오를 때면 서대문 형무소를 보일 듯 말 듯 스쳐 옥바라지 마을을 옆에 끼고 올랐는데 오늘은 안산이 놀이터인 선배가 무조건 따라오라고 해서 형무소를 반 바퀴 돌아보게 되었다. 오래전 형무소 구경은 했지만 느낌이 달랐다. 이런 담은 보여주기 위해 고친 담일 테고... 사방을 이런 담으로 둘렀을 텐데.... 높이는 있었지만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손으로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은 탈출할 수도 있겠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
빈 화분이 있으면 맹숭맹숭해서 뿌리로 겨울을 나는 식물에는 인내력이 부족한 편이다. 작년에 엄마의 몸뚱이에서 잎을 잘라 물꽂이 하여 뿌리내린 것을 흙에 심었더니 새싹이 요만큼 자랐다. 약 10개월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쉽게 자랄 것 같아도 몇 번을 성공 못했는데 밤에는 비닐을 씌워주고 낮에는 햇빛을 보게 해줘서 그런가 요번에는 봐줄 만하게 자랐다.^^ 바이올렛을 키우는 요점은 추위를 피하고 반 그늘에 두며 잎에 직접 물 닿는 것을 피하라고 일러준다. 큰 화분에 세 포기를 그대로 두려다 사다 놓은 흙이 있고 별안간 마음이 움직여 분갈이를 모두 해주고 화분마다 파인 곳은 퇴비를 얹어주었다. 1년이 지난 엄마 화분은 다시 몸체가 부실해질 정도로 잎이 무성해져 기온이 오르기를 기다리려다 이왕 하는 김에 잘라 ..
명절이 지나 사람들이 얼마나 오겠냐며 예약 없이 수목원에 갔다. 하루 5000명을 입장시키는데 주차장이 텅텅 비어서... 걱정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은 지도에서 왼쪽을 돌아볼 것이다.^^ 널찍한 중앙도로에서 숲속카페라 쓰인 방향으로 들어갔다. 전나무 숲길로 향하는 것이다. 기온이 여러 날 낮아 내린 눈이 있어 좋았다. 집에 있으면 코로나에 안전할 수 있겠지만 답답하니 따끈한 차 끓여서 운동과 맑은 공기에 숲속 누비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숲을 더 가까이서 보고 듣고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 '숲 생태관찰로'로 접어들었다. 작년 초여름에 다래덩굴을 봤던 곳이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뿌리가 보인다. 태풍이나 강풍에 의해 뿌리가 뽑히거나 수간이 파괴된 나무를 풍도목(風倒木)이라 한다나? 이..
하마터면 입춘을 지나쳤을 것이다. 연휴 끝이고 생각이 미치지 못하여서다. 한 겨울이라 소식 전하니 무슨 소리냐며 입춘이 2월 4일이라고 명절 전에 문자가 왔었다. 오호~~~ 기억해야지! 그리고 오늘에서야 입춘 시각을 살펴보니 오전 5시 51분이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내일은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하는데 언제 쓴단 말인가! 저녁 먹고 붓과 종이를 찾아 펼쳤다. 먹물을 부어 글씨를 써보는데 흐릿했다. 물을 타서 넣어둔 것이었다. 다시 먹물을 찾았는데 농도가 똑같아서 불안해졌다. '먹물이 없나?' 주변을 살펴 다행히 발견하였다. '글씨야 부족하더라도 써서 붙이면 정성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입춘첩을 찾아 요번에는 '去千災 하고 來百福이라!'라는 문구로 택했다. (천 가지의 재앙은 가고 백 가지의 복은 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