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육회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지만 만들 생각을 못 했는데 연말에 부모님께 다녀와 이제 구정에나 가야겠구나 하던 중 남동생이 일이 있어 못 가니 함께 가지 않겠냐고 올케에게 연락이 왔다. "점심을 준비할 테니 같이 드세요!" "난 뭐 할 것 없어요?" "함께 가주시기...ㅎㅎ" 도착하여 밥솥을 열어보니 적당량 있어서 하지 않아도 되었고 만들어 온 육회와 배추, 깻잎, 버섯과 고기를 켜켜이 넣고 육수를 부어 나베(?)를 후루룩 끓여서 김장김치와 상차림을 어렵지 않게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쉬지 않으시고 가끔 국물을 떠드시며 연신 육회에 손이 가셔서 소화가 걱정될 지경이라 천천히 드시라 할 정도였는데 그간에 밥맛이 없어 은근히 걱정이셨다가 모처럼 육회가 잘 들어가 걱정이 없어지셨단다.^..
일주일 전 오빠와 약속을 해서 아버지께 간다고 여쭈니 요즘 바쁘니까 연장하시잖다. 자식들이 오지 않아 궁금해하시는 부모님들이신데 오히려 튕기(?) 신다며 일주일이 지났다. "언제 날 정해서 오너라!" 오라버니는 당장 다음날이 좋단다. 나도 별일 없어서 약속을 하고 몇 시간이 흘렀을까! '아버지께서 밭에 계실 때 내일 간다고 말씀드려야 무엇을 챙기시려면 천천히 준비하시지.' 하지만 벌써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신 후였다. "아버지 내일 가기로 했어요!" "그래? 점심은 어떻게 할까?" "추어탕 사갖고 갈 테니 걱정하시지 마세요!" 오빠가 재난지원금을 못 받았다고 해서... 한편으로는 영광스럽기도 했는데 나는 받았으니 이럴 때 한턱내야겠어서...ㅎㅎ 간식과 과일 추어탕 5인분을 준비해 떠났다. 막히기도 하..
캐나다에 사시는 초등학교 선배님이 시집을 보내주셨다. 총동문회 일을 떠난 지 3년째지만 어찌 기억하시고는 일단 이메일을 보내셨다는데... 무지 반갑고 고마웠다. 그곳에서 시인은 구둣방을 하고 계신다. 이를테면 수제구두를 만들고 수선하시고... 그래서 시인이면서 수선공이라 불리셨는데 한국 사람보다 발이 얼마나 크겠나! 때때로 발 작은 사람이 와서 가죽이 덜 들어감에도 왜 값이 똑같냐고 따지듯 묻는다나? 나도 갸우뚱해지는 대목이었는데... 떠올려보니 작은 신발에 공이 더 들어가겠다 싶었다. 요번 들려온 소식은 이제 퇴직하셨단다. 당신의 일터지만 일흔이 넘으셨으니 쉬셔야지! 산책에 사유하는 시간이 늘어나 그러실까 詩에서 언어의 유회와 깊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영정사진 찍으러 가자는 글에서는 아는 선배들의 이름..
그러니까 몇 년 전 어느 날, 제법 운치 있는 음식점에서... 몇 명이 앉아 저녁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첫사랑이었다는 그 아이가 이왕이면 와인도 한잔씩 하자며 이끌었을 때 감각 있다고 나름 분위기 올라갔었다. 평소에 조심하는 술이지만 가볍게 여기며 중간중간 한 모금씩 마셨는데 음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얼굴이 근질근질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알레르긴가?' 슬며시 일어나 거울 보려고 장소를 옮겨 살피니 붉은 기운이 돌며 얼굴 층이 도드라져 두 얼굴을 가진 여인처럼 변하려는 게 아닌가! 당황하여 약 한 알 먹고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 낯선 동네라 골목을 이리저리 살피다 정신없이 돌아와 보니 밥 다 먹었을 시간은 분명 안 된 것 같은데 모두 나와 건물 입구에 늘어서 있고... 첫사랑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