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중에서 蘭을 예뻐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이다. 어찌 보면 제일 등한시해도 되는 것이 蘭인 듯싶은데 한 뿌리 나오기가 영 힘들고... 물을 언제 줘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 이따금 기분 나는 대로 줬었다. 보통은 흙이 말랐거나 잎이 늘어져있으면 주지만 蘭은 보채는 일 없이 맨날 비슷해서 모르겠었다. 그러고 보니 흙이 아닌 돌이 얹어있어서 웃거름이나 분갈이를 해주거나 영양분을 준 적도 없었다. 무엇을 먹고 살았을꼬? 한때 주인공이었겠지만 들러리로 따라온 식물들이 몇 배로 잘 자라 식구들 늘릴 때에도 살아 있으니 뽑아내질 못하고 비싸다니까 蘭 화분에 무엇을 심기도 그래서 그냥 마지못해 두었었다. 강한 햇볕도 싫어한다니 까다로운 것 같아 구석에 놓고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9월 2일..
비가 잠시 소강상태(小康狀態) 일 때 뒷산에 올랐더니, 나뭇잎들이 비바람에 떨어져 폭풍의 언덕을 연상케 하였다. 잎들이 소복해서 사람이 다니는 길처럼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 올라 가끔 누군가가 쓰는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한 계단씩 내려오며 쓸었다. 한 번은 경험하고 싶은 그날이 온 것이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고 바람도 잠시 쉬는 고요함 속에... 회색빛으로 칠해진 계단에는 한동안 노란 소나무 잎이 떨어져 있어 이렇게 소나무가 많았나 고개 한번 들어보고... 쓱쓱 싹싹 이쪽저쪽으로 공중에 떠있는 계단이라 양옆으로 던졌다. 땀 방울이 송골송골 얼굴에서 목으로 흘렀다. 수행자가 된 느낌이었다. 나처럼 산책길이 궁금해 나온 사람 두 명이 있었다. 적당한 비질에 마당 한 편에서 이렇게 생잘긴 알맹이를 만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