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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맑은 날이 계속되어 아침을 먹자마자 어딜 가고 싶었다.
다니던 길도 문득 지루해져서 여행 가는 셈 치고 엄마한테나 가볼까?
미리 마음먹었으면 서둘렀을 텐데 중간에 마트에 들러 오후 2시쯤 도착했으니,
몇 시간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아버지 붕붕카를 두 번이나 타 봤고... ㅎㅎ
올 때는 1m가 넘는 대파 한 다발과...
알록달록 채소들을 배낭에 가득 채우고 손에 들고는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무릎에 촉촉한 물기가 느껴져서
'아이고~~~ 아까워라! 수박이 깨졌나 봐...어쩌나...!'
배낭 맨 아래에 신문지 돌돌 말은 수박을... 그 위로 참외, 호박을 쌓아 무거웠을까?
차곡차곡 담아 풀어놓을 수도 없어서 그대로 지하철에 옮겨 타고...
무릎에는 손수건을 얹어 응급조치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보따리를 풀어보니,
수박은 똘똘한 얼굴로 방긋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너만 아니면 됐다, 그럼 누구?"
도라지 얼린 것을 한줌 주셨는데 오면서 전혀 생각하질 못했다.
어쩐지 냄새가 달달하지 않고 비릿하니 좀 이상했었다.
하나하나 늘어놓고 정리하는데...
호박잎을 주셨다더니 예쁜 호박꽃까지 등장해서 햐~~~ ㅎㅎ
옷 갈아입기 전이라 찜찜했어도 수박이 온전하지 꽃을 보자 기쁨이 두 배로 되었다.
솎아주셨겠지만 딸에게 꽃까지 보내시다니...^^
된장국을 끓일 근대나 대파는 다듬어서 냉장고에 그냥 넣었지만
나머지 채소들은 씻어서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리는데,
소쿠리에 담겨져 있는 모습이 풍성하고 왜 이리 아름다운 것인가!
얼른 사진을 찍어 예쁘죠? 하며 아버지께 고마움을 표시했더니...
평소에 유머가 많으신 아버지께서는 대뜸 고민스러운 연극배우 목소리로,
"내가 너 먹으라고 보냈는데 다시 보내주면 어떡하라는 거냐?"
"아버지 잘 먹을게요!... ㅎㅎㅎ"
이제부터 약속 없이 어딜 가고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엄마한테 달려가야겠다.
2018년 9월 4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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