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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세월 앞에 내 구두...

평산 2014. 3. 6. 08:00

 

 낭군이 멋쟁이구두라고 골라준 15년쯤 된 구두다.

그동안 기껏 해봐야 열 번 정도 신었을 텐데...

가장 최근에 신은 것이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결혼식장에 가려고 치마와 어울릴 구두를 찾았다.

굽이 제법 있어서 걱정되었지만 이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더니...

키가 흠씬 커져서 멀리 보이고 넓게 보이고 훤하게 보였다.

부자연스러울까 봐 허리를 펴고 모델처럼 선 따라 걸어보는데... 

얼만큼 지나자 아스팔트길에 못이 부딪히는지

'딱딱딱'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발걸음이 이상해서 그런가?'

 

 한적한 곳에서 신발 한 짝을 살펴보니,

 '앗! 부끄러워라!'

굽이 반쯤 떨어져 나가 이빨 빠진 모습으로 휑하지 않겠나!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둔했을까? 그럼, 다른 한 쪽은???'

역시나 삼분의 일 정도가 떨어져 나가...

어두컴컴하니 들쑥날쑥 여우 굴 모양이 되어있었다.

 '굽이 닳은 것도 아니고 멀쩡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가슴이 철렁해지며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이 천 길 만 길로 뻗어 내렸다.

슬며시 초콜릿 조각처럼 떨어져 나간 모양이다. 

 '지하철역 입구에 구두수선집이 있는 걸 봤는데 문 열었을까?'

 '제발 열어 있어 다오!'

 

 역까지는 70m 정도 남았는데 옷차림은 한껏 멋을 부렸으면서...

밑창이 여우 굴속인 신발을 누군가가 내려다볼까 봐 아닌 척

똑바로 걸었는데, 그럴수록 못 소리가 왜 그리 딱딱거리는지...ㅠ...

얼굴 표정을 자연스럽게 가지려 해도 심기가 불편하여 굳어있었을 것이다.

돌아가면 바로 수선집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곳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몸을 떠난 마음이 벌써 모퉁이로 꺾어지며 앞장서고 있었다.

까맣게 보이는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신사분이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렇지?

옳거니! 야호~~~^^

 

 수선하시는 분은 의외로 아주머니셨는데 구두가 새것이지만....

오래도록 신지 않아서 그렇다며 자주자주 신어줘야 한단다.

신발에 맞는 굽을 찾는데 자그마치 10분을 뒤적뒤적 뒤적뒤적...

그래도 나타나질 않자 체념하신 듯 널따란 판을 재단해서 본드를 펴 바르고

불에 그슬려 신발에 붙인 다음 방앗간처럼 돌아가는 기계에 전기를 연결하여...

너덜너덜한 부분을 말끔하게 갈고 다듬고 마지막으로 못 박으며 끝이 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어려움을 앞에서 지켜봤으니 과연 얼마일까?

구두에서 머물렀던 눈동자를 거두어 아주머니 입만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에 처한 부끄러움과 수고로움에 비한다면야...^^

 

 이제 갈길이 바빴다.   

급해져서 얼른 갈아 신고 나오는데, 와우~~~ㅎㅎㅎ

 '딱딱딱' 못이 닿는 소리 없이 발을 뗄 때마다 탄력성이 느껴지며...

폭신한 우레탄 길 지나 듯 사뿐했으니 다름 아닌 내가 봄처녀였다 할까.

 

 구두야, 생각지도 못 한 별일이 있었구나!

과거 10여 년 동안 모른 척해서 미안해.

너도 태어날 때는 신발장에서 잠만 자길 원하지 않았겠지! 

오늘 신고 갔더니 멋지다고 놀라는 사람들... 보았니?...ㅎㅎ..

부드러운 굽으로 되살아났으니 다리 근력 키워서 이따금 대하도록 할게!

 

 

 

 

 

  2014년  3월  6일 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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